정당한 전쟁론과 평화주의… 그러나

March 4th, 2006

최근 올라온 질문에 답변하다가…

“여러분의 대적자가 양심을 갖고 있다면, 간디처럼 비폭력의 길을 따르십시오. 그러나 여러분의 원수가 히틀러처럼 양심이 없다면, 그때는 본회퍼의 길을 따르십시오.” (마틴 루터 킹)

…아무리 정교한 “정당한 전쟁” 이론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앞서 인용한 비폭력주의자 마틴 루터 킹의 말도, 어떤 처지에 있는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되어 이용될 수 있다. 실제로 미국 우파 복음주의자 가운데 하나인 팻 로벗슨 목사는 얼마 전 남미 베네주엘라 좌파 정권의 차베스 대통령을 암살이라도 해서 축출해야 한다면서, 본회퍼의 경우를 인용했다. 권력과 부를 갖고 있는 이들, 그리고 미국을 쥐락펴락하는 우파 복음주의자들은 본회퍼의 전체 신학이 아무리 자신들의 신학과 정반대일지라도, 그 몇 마디 말과 상황을 교묘히 조작해서 자기 말로 만드는 데는 혀를 내두를 만한 특기를 가졌다. 그러니 어떤 권력이, 그리고 어떤 상황의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느냐가 이런 문제를 분별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사실 어떤 이론과 어떤 대가의 말보다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걸어가셨느냐 하는 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정한 바탕일테니까. 사순절이 바로 그 예수님이 걸어가셨던 길의 가장 분명한 표상이다. 그 여정 속에서 다시 전쟁과 폭력, 그리고 평화를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모호한 길의 모험

February 27th, 2006

격월간 [공동선] 3-4월호에 실린 글을 이 자리에 옮겨 싣는다. 쓰나미 재해에 관련한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의 글을 번역하여 싣는 일로 인연을 맺은 “공동선”에서 다소 거창하게 “나의 길”이라는 제목의 글을 부탁해 왔다. 나이 70줄은 돼야 이런 제목을 받을 만한 터에, 뭘 살아왔다고 “나의 길”을 운운하는가 싶었는데, 바로 으레 그래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앳된 생각이라도 나누려는 게 기획의도라는 해명에 한번 써보마고 했다. 내뱉은 말들은 늘 부끄러움이지만, 여전히 걸어가는 여정길에서 우연히 만날 어떤 날줄이 되는 경험 나누기였으면 하는 한가닥의 바람일 뿐… 여기에 중복 게재를 허용해 준 격월간 [공동선]과 문윤길님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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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신부가 주인공인 NBC의 새 TV 드라마

January 6th, 2006

한국에서는 미국의 최근 인기 TV 드라마들이 곧잘 소개되어 동영상 파일로도 돌아다닐 정도가 된 모양이다. 그러나 정작 미국에 와서 살아가는 처지에서는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될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없지 않지만, 11시 뉴스 빼고는 드라마 시청까지는 엄두를 못낸다 (여러 이유에서 ^^). 그런데 계속해서 보게 될 것 같은 TV 드라마가 오늘 밤부터 시작된다. 한 성공회 성직자의 고민과 가족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The Book of Daniel”이 그것이다.

방송국의 선전 등에 따르면, 주인공 다니엘 웹스터 신부는 교회에 헌신적이고 가족에도 충실한 성직자이다. 하지만 성직자로서 신앙적인 회의가 있으며, 가족은 가족대로 복잡한 고민과 갈등을 노출한다.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과는 다른 신앙적 견해때문에 교구장인 여성 주교 (여성 주교 –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성공회에는 여성 주교가 있다)와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가족사의 개인은 더 복잡하다. 신부는 병원 처방이긴 하지만 강력한 진통제인 비코민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부인은 백혈병으로 아들을 잃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해서 낮에도 마티니 한잔씩을 홀짝거려야 하는 알콜 중독기가 있다. 쌍둥이 동생 (혹은 형)을 백혈병으로 잃은 아들은 동성애자이다. 딸은 어딘 가에 쓸 돈을 마련하려고 마리화나를 거래하고, 입양한 중국계 아들은 교인의 딸과 사귀면서 문제를 일으킨다. 이런 지경에 있는 신부에게 예수님은 종종 나타나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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