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의 새로운 성공회 대표 – 여성사제 마타라베아

February 18th, 2001

세계성공회(The Anglican Communion)은 UN에 옵서버를 파견해서 국제 관계에 대한 성공회의 입장을 표현하고 로비를 벌인다. 올 들어 새로운 유엔 대표가 지명되었다. 사모아 교구의 총사제인 타이말레라기 마타라베아가 그 장본인. 55세의 여성사제인 마타라베아 신부는 그동안 사모아 지역 유엔 업무를 관장하면서, 특별히 UNDP(유엔개발계획)의 상임공동의장으로 남태평양지역 환경 프로그램에 관여해왔다. 세계성공회협의회(ACC) 위원으로도 활동한 마타라베아 신부는 정의와 평화 그리고 가족 문제에 관련하여 세계성공회 안에서 많은 경험을 쌓기도 했으며, 여성과 가족 문제에 대한 특별한 관심으로 그동안 ACC에서 이 문제에 대한 지도적인 위치를 감당해왔다.

캔터베리 대주교 조오지 캐리 박사는 마타라베아 신부가 세계성공회를 대표하여 유엔 옵서버로 참여하는 것을 크게 기뻐한다며, “유엔개발계획(UNDP)에 참여하여 헌신한 그의 경험과 세계성공회협의회를 통한 활동을 통해서 무엇보다 민중과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새로운 자리에서 훌륭히 임무를 수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성공회협의회 총무인 존 피터슨 신부는 UN의 성공회 대표는 세계에 대한 넓은 안목이 있어야 한다고 전제한 뒤, “ACC 위원이었던 마타라베아 신부는 세계성공회의 일치에 대한 깊은 이해와 더불어 그동안 뉴질랜드 아오테아로아 관구의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해 온 탁월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피터슨 총무는 또 “사모아 지역에서 UNDP 활동을 통해 유엔의 활동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계 성공회의 다양한 지원 속에서 유엔에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뉴질랜드 관구장 존 패터슨 주교는 마타라베아 총사제는 뉴질랜드 관구에서 “높이 존경받고 사랑받는 성직자”라고 말하며, “태양양의 다양한 나라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줄 아는 성직자로서, 지난 10년 동안 교회를 위해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깊은 신앙심으로 탁월한 국제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특유의 부드러움으로 세계성공회와 유엔을 위해서 헌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ACNS)

교회 성장의 비법을 듣는다

February 4th, 2001

지난 해 11월 미국성공회의 28명의 주교를 포함한 성직자 평신도 300여명은 교회 성장 위한 비법을 듣기 위해 텍사스 주에 모여들었다. 이 모임의 최고 조언자는 텍사스 교구장인 클라우드 페인 주교. 그는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기존의 습성에만 젖어 있었다”고 말하고, “교회가 건강해지고 새로운 성장을 기하려면 무엇보다 선교와 전도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나인 교회에 대한 비전”이라는 제목의 이 교회 성장 세미나는 3년 전에 마련되어 미국성공회 내에서 유명한 프로그램으로 정착했다. 이번 모임에 참석한 메린랜드 교구장 일로프 주교는 “이 모임에 올 때는 교회 성장에 대해서는 초보자인 경우가 많지만, 집에 돌아갈 때는 새롭고 놀라운 아이디어로 가득차게 된다”고 말한다. (계속 읽기…)

떼제의 기적

January 1st, 2001

교회 성장이 멈추고 젊은 세대들은 교회를 떠나가고 있다고들 한다. 그런데 왜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는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이번 성탄절에 모여 기도하며, 묵상하고 함께 노동하는 것일까? 현대판 크리스마스 기적이라 할 만한 프랑스 떼제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프랑스 남부 떼제라는 마을 언덕에 평범한 콘크리트 교회 건물이 세워진 것은 1960년대의 일이었다. 그 첫인상은 주변의 농장 집들과 시골집과 영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이곳이 바로 떼제 마을이며, 수 천 명의 젊은이들이 유럽 각지에서 크리스마스 기간을 보내기 위해 찾아오는 곳이다. 이들은 낡은 버스와 기차를 타고 찾아오거나, 걸어서 오는 경우도 있다. 이곳에서 며칠을 보낸 뒤 젊은이들은 다시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청년 신앙대회에 참여하여 좀 더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프랑스 혁명이래 한 번도 상주하는 성직자가 없던 마을 떼제는 지금 서구 사회에서 새로운 그리스도교 신앙의 부흥을 보여주고 있다. 60여 년 전 스위스 개신교 목사의 아들이던 로제 수사가  25살의 나이에 세운 떼제 공동체가 그 힘의 모태이다. 이제 85세의 노인이 된 그는 백발이며 몸도 상당히 쇠약해졌다. 그는 그 동안 교황을 비롯하여, 마더 테레사와 달라이 라마, 그리고 수많은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면서 영적인 교감을 가진 바 있다.

서구 사회의 교회는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여전히 떼제 마을에 매년 찾아들고 있다. 거기서 노래하며 기도하고 묵상하며 노동을 한다. 무슨 연유일까? 로제 수사를 비롯한 100여 명의 형제 수사들도 1959년도부터 젊은이들이 왜 이렇게 모여들고 있는지를 모르겠다며 겸손해한다. 처음에는 한두 사람씩 드문드문 찾아왔다. 그러던 방문이 이제 물결을 이루게 되었다. 현재의 수사들도 그때 찾아온 젊은이들인 경우가 많다.

부활절 기간과 여름 휴가철에는 방문객들로 근처의 모든 지역이 텐트로 뒤덮인다. 이들을 먹일 음식은 과히 성서의 기적과 비견할 만하다. 떼제는 그 자체로 그리스도교의 예배 공동체의 한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그 영향력은 수많은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에게까지 미치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떼제 공동체를 통해서 새로운 힘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다. 떼제는 그야말로 봄의 생수를 만드는 공장과 같다. 이미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대학 채플을 비롯한 수많은 교회와 대성당에서는 떼제 스타일의 예배와 기도가 젊은이들을 주축으로 행해지고 있다. 작은 기도 의자 혹은 방석에 앉아 촛불을 켜고 분명하면서도 계속 반복되는 성가를 부르며 기도하는 이 예배는 새로운 세기 예배의 모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런 성가가 가수 엔야로부터 베네딕트 수도회의 다양한 요소가 섞인 것이라고 평한다. 최근 영국 성공회의 새 기도서인 [Commom Worship]에서도 지난 대림절 기간 동안 떼제 스타일의 성가와 화답송을 소개하여 16,000여 개의 교회가 이를 사용하도록 했다.

로제 수사는 1940년 프랑스 떼제 마을에 정착해서 유대인들과 피난민들을 도왔다. 그리고 이 뜻에 동조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게 되면서 규칙을 마련하게 되었고, 이로써 공동체가 성장하게 되었다. 이들은 가구며 장식이 전혀 없는 방에 모여 정교회의 이콘(성화) 앞에서 간단한 기도를 드리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떡을 떼었다. 잠자는 방도 마룻바닥에 침대 하나뿐이었다. 이렇게 떼제 공동체는 시작되었다.

이제 교회는 포스트모던적인 분위기를 갖고 있다. 길게 드리워진 색색의 천이며, 다양한 이콘들이 마련되어 있고,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이 함께 기도하는 형제들을 비춘다. 교회 안은 대체로 젊은이들로 꽉 들어찬다. 기도에 참여하는 젊은이들은 대부분 30대 이하이다. 서구교회가 어떻게 해서든 교회로 끌어들이려 하지만 실패하고 마는 연령대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젊은이들을 이렇게 끌어들일 수 있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신앙을 향한 젊은이들의 열정 말고는 어떤 방법도 없다. 캔터베리 대주교가 약 1천여 명의 순례자들과 함께 떼제를 찾았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로제 수사에게 그 방법을 물었다. 로제 수사는 “여기에는 신앙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방법도 없다. 그리고 이곳에서 어떤 운동을 일으키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리고 어떤 해결책도 이들에게 제공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기서 신앙에 대한 열망을 발견하고, 큰 힘을 얻는다.” 그의 대답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로제 수사는 여전히 세상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고 있다. 아프리카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고통받는 사람들과 피난민들에 대한 관심은 끊이지 않는다. 에이즈 환자들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그는 이번 크리스마스를 통하여 세상에 들려줄 말에 대하여 “그리스도를 통한 용서와 사랑, 그리고 일치야 말로 모든 종교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전반적으로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추세이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는 당분간 계속되리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안에서 있는 소망이 끝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도 떼제 공동체와 같이 새롭게 젊은이들과 기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 최고의 종교개혁자였던 요한 23세는 “매우 겸손하며 단순하게 기도하라”고 말했다. 그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두고 다른 겉치레를 두지 말라고 권고했다. 지금 우리에게 이러한 기도의 태도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