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관한 잡스런 교차 읽기 – 홀바인, 모차르트, 콜린스, 그리고 Ch-

Tuesday, January 31st, 2012

어떤 사건에 대한 기억은 늘 시대와 접목하여 교차한다. 원초적 사건을 되살리는 역사로서 다양한 잡종화는 그 잡종끼리의 어울림과 메아리도 만들어 줄 것이다. 이것을 교차 읽기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들 한스 홀바인(Han Holbein the Younger, ca 1497-1543)은 <<관에 든, 죽은 예수의 몸>>을 그렸다. 그의 상상력에 담긴 죽음은 죽음이 던지는 명료한 발언이다. 그래서 시신은 여전히 눈을 뜨고 어딘가를 바라보고, 손은 다시 어딘가를 지시한다. 물론 그 발언의 내용과 지시 대상은, 그 사건을 기억하는 이들과 그 방식에 따라 다를 테다. 다만, 그의 리얼리즘은 역사와 동떨어진 ‘제멋대로’의 상상력과 해석을 제한한다.

Holbein-Dead-Christ.jpg

이러한 리얼리즘의 상상력과 그 제한 기능은 의례화의 정점에서 종종 교리 속에 묻히곤 하는 ‘그리스도의 몸'(Corpus Christi)에 대한 해석과 교리를 해방하고 확장하도록 돕는다.

Ave Verum Corpus

진실한 몸을 경배하나이다.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신 몸
인간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모진 수난으로 희생되신 몸
찔린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흘렀으니
우리가 죽음의 심판에 들 때에
[이로써 천상 잔치를] 미리 맛보게 하소서.
오 사랑스러운 예수님, 오 자비하신 예수님, 오 마리아의 아들 예수님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cf. 모차르트, “아베 베룸 코르푸스” (지휘: 레너드 번스타인)

1960년대 이후 미국 시민 인권 운동과 함께했던 음악 풍조 가운데 하나는 단연 포크송이다. 올해 72세로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주디 콜린스(Judy Collins, 1939 ~ )는 그의 앨범 <<진실한 이야기들과 다른 꿈들>>에 <체>라는 노래를 짓고 불러, 1967년 죽음을 맞이한 체 게바라를 기렸다.

체 Che

어느 날 아침 볼리비아에서
빨치산의 지도자와 그의 동지 두 명은
살아남기 위해 산으로 도망쳐야 했으니

푸른 숲과 먼지 덮인 마을을 거쳐 작은 길을 따라서
그들이 바삐 지나갈 때, 가난한 마을 사람들은 웃음 지으며 소리쳐 응원했으니
예수께서 불러 모든 이들에게 말씀하셨으니, “우리가 떠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총으로 우리를 겁주려는 놈들이 있지만, 우리는 돌아올 거에요.”

멈추지 말고 그대의 일을 계속해요
멈추지 말고 그대의 발언을 계속해요
그대는 그걸 손에 가지고 그대의 삶에, 그대의 땅에 전해 줘야 해요

사람들은 웃음 지으며 소리쳐 응원했으니
그들이 잠시 달아나는 동안
일어서서 바라보던 그들, 쉴 수 없는 그들의 빈손

예수의 몸은 지프 차에 있었으니
비행기에 다다르기 전에 폭격당한 그 차 안에

사제는 그를 축복하며 자랑스러워했으니
그날 오후 그가 남긴 것이 있었기에

멈추지 말고 그대의 일을 계속해요.
멈추지 말고 그대의 발언을 계속해요.
그대의 손에 가진 것을 그대의 삶에, 그대의 땅에 전해 줘야 해요

그대가 걸어가야 할 길을
그대에게 보여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느니,
그들은 그대에게 말해 줄 뿐, 다만 보여 줄 뿐,
그리고 그들은 내일 떠나고 없으리니

성유와 유향 냄새가 이 흙집 방 안을 채우고
식탁 위에는 한 남자의 시신이 뉘어있으니
창백하고 젊은 그 얼굴, 검고 곱슬한 그 수염
저녁 불빛에 휑한 두 눈.

그를 아는 마을 사람들, 그를 죽인 사람들이 안에 서 있으니
쉴 수 없고 빈 그들의 손
그들은 허공에 침묵의 십자가를 그리는 사제를 바라보며
그들 마음에 있는 하느님께, 자신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느니

멈추지 말고 그대의 일을 계속해요.
멈추지 말고 그대의 발언을 계속해요.
그대의 손에 가진 것을 그대의 삶에, 그대의 땅에 전해 줘야 해요.

그대가 걸어가야 할 길을
그대에게 보여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느니,
그들은 그대에게 말해 줄 뿐, 다만 보여 줄 뿐,
그리고 그들은 내일 떠나고 없으리니

(작사 작곡 노래 – 주디 콜린스 / 번역 – 주낙현 신부)

cf. Pueressence, Che

이런 교차 읽기를 어떻께 향유할 것인가?

잡감 – 죽음, 종교, 그리고 잡종된 기억의 발언

Tuesday, January 31st, 2012

죽음은 발언이다. 인생이 탄생과 죽음 사이에 놓여 있으니, 죽음은 그 어떤 것이든 그 자체로 그 생 전체를 두고 던지는 마지막 발언이다. 어떤 점에서, 그 발언에 귀 기울여 기억하고 의례라는 기억장치를 통하여 되새기는 일이 종교이다. 죽음 자체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보려는 생각으로 종교가 창안되었다고 하든, 그보다 더 심오한 신학적 변증을 하든, 실상 종교는 죽음을 둘러싼 생의 종말이라는 현실이 만들어낸 그림자 아래 앉아 삶을 생각하는 틀이다. 그때야 죽음은 계속 발언한다.

역사는 이런 발언의 구성체이다. 그러므로 그 죽음을 둘러싼 발언에 대한 기억이 없는, 소위 망각의 사회는 역사를 구성하지 못한다. 되풀이되는 인간 사회의 악행은 대체로 집단적 망각에 기대어, 혹은 망각을 조장하는 이들의 농간으로 가능하다. 그러니 세상살이는 늘 기억의 정치와 망각의 정치가 겨루고 다투는 곳에 놓여 있다. 물론, 이 다툼을 초월한 곳을 종교가 가리키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종교와 역사의 본연을 덮는 적극적인 이데올로기이거나, 소극적이고 무의식적으로나마 그에 부역하는 이데올로기 장치이다. 비루한 삶을 통과하지 않는 종교는 없다.

그리스도교는 죽음에 대한 기억의 종교이다.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고통받는 사람과 연대하다가 스러진 한 인간에 대한 기억의 종교이다. 동시에, 그리스도교는 그 죽음의 발언을 역사 안에서 계속 이어나가는 종교이다. 그러나 순혈(純血)의 기억과 발언이란 없다. 늘 다른 사건으로 겹쳐지고 오염되는 잡종화 과정에서 오히려 그 기억과 발언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이 잡종화를 통한 기억의 진화를 거부하는 순혈복원주의가 수구적 정향과 급진적 해석이라는 두 극단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성서 축자주의는 이런 수구적 교리주의의 행동 방식이고, 성서의 ‘역사적 비평’은 종종 축자주의에 대한 반 명제를 넘지 못하는 지식인의 오락거리가 되기도 한다.

한편, 잡종화에 대한 고민은 명확한 선을 그어주지 못하니, 분명한 전선 형성에 도움을 주기 어렵다. 다만, 종교는 논증과 설득과 전선 형성이 아니라, 생에서 맞닥뜨리는 크고 자잘한 사건이 역사 속의 기억과 발언과 나누는 유비(analogy)를 제공할 뿐이다. 그러니 종교는 이러한 유비의 상상력을 부추기고, 그 상상력 체험의 시공간을 마련해 주는 틀이다. 이때, 삶과 죽음에 대한 기억과 죽음 자체가 남겨놓는 발언은 인간적이며 신적이다. 삶에 뿌리 내린 인간의 죽음이라는 종말적 전이(transitus)에 놓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는, 신-인적 상상력과 기억은 무수한 죽음의 발언과 원초적 성사인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이 남긴 발언을 교차시키는 것이다. 이 작업을 그치면, 신학과 교회는 교권적인 이데올로기 장치라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런 신-인적 상상력과 기억은 그 과정만큼이나 잡종적인 형태를 무수히 만들어 낸다. 다만, 그 잡종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예술적 미(美)일 것이다. 찰나와 억겁을 교차시키는 작업으로서 예술, 그 지속되는 발언을 부추기는 가치로서 미를 생각한다. 특히 종교 안에서 의례와 그와 관련된 예술은 이런 잡종적인 예술과 미를 마련하고 실험하는 무대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또 그것들이 마련하는 시공간에서 자신의 삶을 접목시키는 일이 신앙 훈련이요, 영성 수련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잡감은 늘 행간이 넓고 서로 멀다.

슬픔을 듣는 법 – 한 사제의 동행

Wednesday, June 1st, 2011

며칠 전 흐느끼는 목소리에 밤을 깨운 나는, 몇 년 전 잇따라 자살한 연예인 오누이와 그 어머니 이야기를 다룬 TV 녹화분을 아내가 보고 있던 걸 알았다. 눈물을 훔치는 아내와 건성으로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모처럼 청한 이른 잠이 날아간 터라 무심했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오늘 마주한 글을 읽고는 며칠 전 일과 더불어 마음이 먹먹해졌다. 풀어낼 많은 이야기를 뒤로하고 그저 지구 반대편 어디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 글의 주인공을 잠시 생각했다. 곧 생각을 방해하며 여러 잡념이 끼어들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자살의 소식들. 가족사의 그늘 어딘가에 꼭꼭 숨겨놓은 무참한 자살의 기억. 세상을 등진 이들과 남겨져 슬퍼하는 이들의 이야기들이 가족사와 이웃의 여러 경험과 더불어 마구 섞였다.

그러고 보니 이 블로그에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번 적었다. 또, 몇 주 전 병원에서 한 생명을 기름 부어 하느님께 보내드리고, 그와 가족을 위한 장례 미사의 긴 일정을 보내는 동안에, 죽음은 사적으로 가깝고 친밀한 것이면서도, 금세 아무렇지 않게 타자로서도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 사적인 친밀감과 타자적인 거리감 사이는 멀지 않고, 경계 역시 모호하다. 죽음이라는 사실은 객관적이지만,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들의 마음과 시선은 그렇지 않다.

오랫동안 종교는 죽음에 대한 전문가를 자처했지만, 실은 누구도 그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하고 전해주지 못한다. 그 답을 알고 있다고 자처할 때, 어떤 율법주의와 억압적 윤리로 사람을 괴롭힐 공산이 크다. 종교는 오히려 세상에 남아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들의 마음을 응시하고 듣는 행위에 집중할 때라야 그들에게 슬픔을 극복하는 힘의 시공간을 열어준다. 그 힘은 종교가 신의 이름으로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신의 힘을 말하겠다면, 오히려 신의 신비에 우리 자신을 맡겨둘 일이니, 종교는 우리 주위에 친구로 머물거나 동행하며, 스러진 삶의 기억을 우리 안에 새롭게 그리도록 이끄는 초대이다.

번역한 글을 소개하고, 서툰 번역에 대한 발뺌이나 적으려 했다가 허튼소리를 늘어놨다. 글쓴이는 영국 성공회의 은퇴한 사제이다. 이 동행기의 마지막에 나온 아름다운 문장을 우리말로 옮기기에 힘이 달렸다. 그 맛대로 느끼도록, 그리고 누구의 좋은 번역 대안이라도 듣고 싶어서, 원문 마지막 문장을 괄호에 넣었다. 제목은 내 멋대로 붙였다.

슬픔을 듣는 법 – 한 사제의 동행

데이빗 브라이언트

나는 브리스톨 템플 미드 역에 있었다. 다섯 시간 열차를 탈 참이었다. 젊은이들이 승차했고, 한 아가씨가 내 목에 두른 성직 칼라를 보더니 내게 다가왔다. “신부님, 이야기 좀 할 수 있나요?” 이런 일은 언제나 ‘신부님과 잡담’이라는 우스갯소리 같은 일의 시작이다. 피곤한 일이다. 그러나 그날은 그렇지 않았다. 세 시간 전, 자신의 남자 친구가 자살했다.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았고 치사량의 약을 일부러 먹었다. 함께 살던 아파트에서 죽은 남자 친구를 발견했다. 남자 친구는 자기 존재에서 오는 고통을 더는 대면할 필요가 없었고, 이제 그녀는 마음을 위로하려고 자기 부모님께 내려가는 중이었다.

그녀의 고뇌가 쏟아져 나왔다. 자살을 둘러싼 이런 절망적인 생각들은 익숙한 것들이었다. 성직자로 생활하면서 평생 이런 이야기를 들은 탓이다. 처음에는 하느님을 향한 분노가 나왔다. 한 청년이 자신을 파괴하는 순간에도 멍청하게 서 있는 하느님에 대한 분노였다. 아니 그보다 더 심했다. 하느님은 헤아릴 수 없는 어떤 심원한 이유를 들어서 그의 죽음을 획책한 것은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런 무참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이것은 형벌인가? 아니면 시험인가? 열차가 달려가는 동안 하느님을 향한 분노는 점차 자신의 내면을 향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인정사정없이 자기 자신을 공격했다. 정상을 참작할 만한 어떤 이유도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좀 더 마음을 썼어야 했어요.” “내가 그를 망친 거에요.” “다 내 탓인 것 같아요.”

예상했던 대로, 원망의 시선은 마지막 방향을 틀었다. 죽은 애인을 향한 원망. 그 약병을 다 삼켜버리기 전에 자기 여자 친구가 느낄 무참한 마음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것일까? 그건 겁쟁이 같은 도피일 뿐이야. 그저 수치를 남기고, 애통해 하는 이들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 자살이라는 낙인을 남길 뿐이었다. 나는 듣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상처는 완전히 배출돼야 하기 때문이었다. 분노는 소진돼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뒤라야 치유가 시작된다.

내 침묵에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그녀가 지닌 하느님 상에는 문제가 많다고 지적할 시점이 아니었다. 그녀가 생각하는 신은 벌과 상을 주고, 죽음과 생명과 비극을 독재자처럼 멋대로 관장하는 신이었다. 이런 신 관념은 어서 빨리 고쳐주어야 했더라도 말이다.

더욱이 이런 일을 무거운 윤리로 성급하게 다루는 것도 적절하지 않았다.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인데, 그런 점에서 보면 남자 친구의 행동은 나쁘고 배은망덕한 일이라 말한다 해도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애인의 죽음은 자유로운 선택이었고, 누구나 그런 권리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면, 오히려 그녀에게 배신감만 불 지필 뿐이었다.

그녀를 지배하고 있는 죄책감을 두고, 성직자랍시고 입바른 몇 마디를 던진다고 해서 그 감정이 누그러지지도 않는다. 사제가 재빨리 용서의 선언을 한다고 해서 도움될 리 없다. 다만, 자기 수용만이 도움이 된다.

그래서 나는 남자 친구와 함께했던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라고 했다. 그녀는 우울증이 드리운 어둠과 그들이 함께 싸우며 보냈던 고통스러운 밤들을 말해줬다. 그리스에서 함께 보냈던 휴가에 대한 추억, 새로 세를 내서 들어간 아파트 열쇠를 받아쥐며 기뻐했던 순간. 그 순간들 사이에 사랑의 기쁨이 한 올 한 올 짜여 있었다. 그 애인이 수채화를 그리는 붓놀림이 뛰어났다는 사실과 그가 그녀에게 얼마나 상냥하게 대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녀가 말하다 울다를 거듭하며 이야기를 누비는 동안 우리 열차는 목적지에 다다랐다.

우리는 달링턴 역에서 내렸다. 내가 집에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그녀는 괜찮다면서 내게 악수를 했다. 그냥 가라는 뜻이었다. 나는 그 마음을 알았다. 슬픔이 깊은 만큼, 정적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짐을 벗고 나서는 더더욱.

“도움을 주셔서 고마워요.”

그녀가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정말로 뭔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녀를 도와준 것은 전혀 없었다. 그녀는 사랑했던 남자의 모습을 한 획 한 획 자신의 붓질로 스스로 그려냈던 것이다(She had done that herself by painting a picture of the man she loved, brush stroke by brush stroke). 그 누구도 그 그림을 그녀에게서 앗아가지 못했다.

원문: 데이빗 브라이언트 David Bryant, http://goo.gl/Fn2H2
번역: 주낙현 신부
후원: 김현주 & 민김종훈 부제 (서울교구 강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