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성공회 의장 주교 성탄절 메시지 2008

Saturday, December 13th, 2008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 (요한 1:5)

세계는 겨울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적어도 북반구는 그렇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삶은 점점 을씨년스럽게만 보입니다. 저당권을 상실하고, 일자리를 잃고, 정부의 기업 구제 조치가 나오고, 재정 파탄이 일어나는 동안에도, 전쟁은 계속되고, 테러리스트의 공격과 신앙의 이름으로 살인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간절히도 빛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어둠이 이기지 못하는 빛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인간의 몸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집없는 부부의 가난 속에, 오랜 동안 남의 지배를 당하던 사람들 안에 태어나신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세상의 어둠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알려주는 인간적이요 신적인 증거입니다.

임마누엘, 평화의 임금, 거룩한 위로자께서 우리에게 오시어, 우리 마음을 되새겨 주시고, 우리의 기억을 되돌리시며,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십니다. 우리가 이 길을 따라 살아가기로 작정할 때, 그 새로운 정신과 마음이 우리 안에서 태어납니다. 하느님 창조의 몸은 새롭게 기억되어 첫 창조 때에 계획되었던 그 모습으로 되돌아갑니다. 그리고 새로운 창조는 예수님의 치유 사건을 통하여 현실이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매년 성탄절기마다 이 이야기를 되풀이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와 기억은 우리를 다시 한번 온전한 하나됨으로 초대합니다.

매년 우리의 임무는 새로운 귀로 이 이야기를 듣는 일입니다. 이 시기의 비탄이라는 어둠 속에서 빛을 보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들에게 기쁨에 찬 마음을 널리 전하는 것입니다. 어둠 속에 자리한 이 기쁜 빛의 이야기를 여러분은 어디에서 나누시렵니까?

캐서린 제퍼츠 쇼리
미국성공회 의장 주교

(번역: 주낙현 신부)

꼬리 문 생각 – 기도서의 축일

Thursday, November 6th, 2008

오늘이 윌리암 템플 캔터베리 대주교의 축일인 탓에 학교에서도 그를 기념하는 미사를 드렸다. 그는 18세기 이후 교회력에 들어 있는 유일한 캔터베리 대주교이다. 그가 별세한 10월 26일이 아닌 11월 6일이 왜 그의 축일인지는 알 수 없다. 영국 성공회 [공동 예배](2000)이 처음으로 이 날을 그의 축일로 지정했고, 미국 성공회가 이 날짜를 따랐다. 최소한 영국과 미국은 그가 교회의 윤리적 이상과 사회적 책임, 그리고 그의 실천이 현대 성공회 정신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한국 성공회 기도서(2004)는 성공회 전통 안에 있는 근대 혹은 현대의 위대한 영성가들이나 신앙 위인들을 교회력에 넣는 일에 인색하다. 10월 26일은 ‘채드’라는 실체를 알 수 없는 인물, 그리고 11월 6일에는 ‘레오나드’라는 6세기 은수자의 축일로 한다.

현대의 성인 몇을 교단 전통을 막론하고 넣긴 했다. 마틴 루터 킹(4월 5일), 본회퍼(4월 9일)가 그렇다. 탁월한 일이다. 그런데 가만 보니 타의에 의한 죽음으로서 순교에 대한 남다른 존경이 비친다. 그러나 그 선택마저도 대중적인 인물, 혹은 교단적인 전통에 영향을 받은 듯하다. 독재에 저항하다 순교당한 우간다 성공회의 자나니 르움 대주교나, 천주교의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엘살바도르)는 찾을 수 없다.

현행 기도서 직전에 나온 [교회 예식서](1997) 작업에서 교회력 부분을 따로 맡아 크리스토퍼 존 수사와 함께 제안서를 만든 적이 있었다. 근거나 상관성이 떨어지는 성인들이나 인물들을 대폭 삭제하고, 성공회 전통과 정신, 그리고 근-현대 그리스도교 역사에 하느님 선교의 증인이 된 인물들을 넣으려고 애썼다. 성공회 신앙 전통을 다양하게 대변하는 웨슬리 형제, 존 키블, 프레데릭 모리스 등이 그러했고, 물론 마틴 루터 킹, 본회퍼, 로메로 대주교 등도 포함시켰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성서의 여러 성인들을 위해서 구약 성서, 신약 성서의 성인들 축일을 넣어, 교회가 어떤 이름 없는 성인들의 삶을 다시 기억하도록 도우려 했었다. 신앙의 족적과 하느님의 선교의 증언은 굳이 순교를 해야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 그 작업이 어디 구석에 남아 있을 터이나, 우리 기도서에서는 흔적이 아련하다.

예배 – 윌리암 템플

Thursday, November 6th, 2008

예배는…

예배는 우리의 본성 전체를 하느님께 따르도록 내어 놓는 것이다.
예배는 하느님의 거룩함으로 우리의 양심을 회복하며,
하느님의 진리로 우리의 생각을 자라나게 하고,
하느님의 아름다움으로 우리의 상상력을 정화하고,
하느님의 사랑에 우리의 마음을 열어
하느님의 뜻에 우리의 의지가 따르도록 내어 놓는 것이다.
예배 안에서 이 모든 것이 모아질 때,
이기심이 물러나고 우리 본성의 가능성인 무아가 드러날 것이다.

William Temple, Readings in St. John’s Gospel, 1939

윌리암 템플(William Temple, 1881-1944) 캔터베리 대주교는 현대 성공회 신학과 정신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 가운데 한 분이다. 또한 20세기 교회 일치 운동의 산파였던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 그리고 “생활과 노동”(Life and Work) 위원회를 이끌었다. 열린 사고와 분명한 정치적 입장 때문에 성직에 들어서는 순간에도, 그리고 성직자가 되어서도 여러 곤욕을 치렀다. 그리스도인 학생 운동을 적극 지원했으며, 노동당에 가입한 몇 안되는 성직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맨체스터 교구의 주교였을 때는 광산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면서 노사 간의 대화를 이끌었다. 신학자로서 하느님의 내재와 초월의 긴장을 성사적인 세계관으로 풀이하려 했고, 윤리학자로서 그리스도교의 사회적 책임과 새로운 사회 질서에 대한 전망을 나누며 사회 개혁에 앞장 섰다. 전쟁 중에 방송 연설가로 국민들을 위로했고, 나치 치하에 있던 유대인들의 피난을 도왔다. 1944년 10월 26일, 캔테베리 대주교직 재임 30개월만에 세상을 떠났다.

빛과 사랑이신 하느님, 주님의 종인 윌리암 템플의 증거를 통하여 주님의 교회를 비추셨습니다. 기도하오니, 그의 가르침과 모본을 통하여 우리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신비에 대한 신앙과 용기와 확신을 갖게 하시고, 정의에 기반하고, 사랑을 법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를 세워나가도록 이끌어 주소서. 성부와 성자와 함께 영원히 사시며 다스리시는 한 하느님이요,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합니다.

Lesser Feasts and Fasts, The Episcopal Church,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