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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상념, 민노씨의 글에 부쳐

Friday, May 22nd, 2009

이건 순전히 민노씨 탓이다. 누굴 탓하는 일은 피하려 노력하나, 덕을 입은 탓은 해야 한다. 민노씨가 아니었더라면, 이제는 내 삶에 고유명사가 된 “오월”이면 여지없이 찾아와 짓누르는 감정을 발설하지 않고 지났을 것이다. 그의 부지런한 블로깅은, 덮고 가면 될 것들을 여지없이 휘저어 놓는다. 그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물론 이는 그의 블로깅에 대한 찬사이다.

민노씨가 남긴 독서의 흔적을 따라가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 바빠 죽겠는데, 이때 이게 올 게 뭐람!’하는 혼자 투정은, 이미 그에게 낚였거나, 정확히 발설되지 않은 어디에선가 그와 맞닿게 되었다는 걸 뜻하는지 모른다. 결국, 한마디 남기려다가, 댓글에 어울리지 않는 말을 늘어놓았다. 그는 내 댓글을 보고 내 블로그에 직접 올려 놓는 게 어떠냐며, 거듭 옆구리를 찔렀다. 그 핑계로, 몇 마디를 고쳐 올려 놓는다. 누구에게는 떠올리기 싫은, 누구에게는 영원한 주장이 되어버린, 5.18이라는 단순한, 그런데 여전히 짓누르는 숫자에 관한, 여러 상념 가운데 하나이다. 이게 그의 기대대로 어떤 울림의 시작이 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민노씨의 격려에 감사.

민노씨: 5.18, 폭력의 구조, 그리고 투명한 죽음

민노씨의 글은 다시 오래된 독서, 그러나 부족한 독서를 되새겨 주고, 무엇보다도 5.18에 대한 겹치는 상념들을 돌이켜주었다. 그가 독서의 자락으로 펼쳐 놓은 르네 지라르(René Girard)는 그렇다 쳐도, 왜 김현에게 광주는 “그림자로만 머물러”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는 왜 광주 자체의 이야기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르네 지라르라는 생소한(할 수도 있는) – 물론 대가의 통찰력을 가진 – 학자의 매우 파격적인 이론을 검토하는 것으로 출발했을까? 김현은 외국의 이론을 우리의 경험에 대비해 봄으로써, 새로운 이론을 소개하고, 더불어 이를 우리 삶에 대한 분석에 적용함으로써(문학 비평이든, 문화 비평이든) 생각의 방법과 지평을 넓히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려는 것이었을까?

내 독서의 한계 안에서, 김현은 이런 일을 이질감 없이, 아니 적절한 낯섦을 이용해서, 우리 문학 평론을 통해서, 울림 있는 우리 말 구사로 전개한 몇 안 되는 평론가일 것이다. 다만, 이런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어떤 이론은 그 발생학적인 맥락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그 맥락에서 동떨어진 이론을 우리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적용하는 게 그리 적절한 것일까? 그리하더라도 그 비판적인 거리 두기의 지점은 어디일까? 그런 점에서 김현, 아니 나처럼 외국에서 공부하는 처지에 있는 이들은, 서구가 마련한 경험과 이론의 정치함에 눌려, 근본적으로는 어떤 이론의 보편성을 전제하는 일에 쉽사리 빠지지 것은 아닐까? 뭐 이런 생각에까지 잡다하게 닿았다. 물론 논리적으로 익은 건 아니다.

그런 참에 다시 르네 지라르를 다시 들춰보며 생각했다. 그가 폭력에 대한 통찰을 신화 분석이나 그 밖의 인류학적(이라고 주장하는) 분석(이 아니고 그 전제를 무차별하게 적용한다는 비판이 있지만)을 통해서 길어올리는 것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욕망하는 인간에게 피할 수 없게 자리 잡은 폭력과 그 은폐의 구조를 발본색원하려는 폭로의 전략으로서 매우 소중하겠다. 이 전략은 폭력에 의한 희생을 감추는 역사가 계속되는 한 그 정당성이 도전받을 수 없다.

그런데도 뭔가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지금까지 몰랐던 걸 이제 내가 알려주마’하는 지라르 특유의 단정적인 태도에 내 마음이 흐트러진 탓일는지 모른다. 다만, 어떤 전제된 구조에 모든 것을 끼워 맞추려한다는 생각은 여전히 남았다. 지라르가 반복해서 사용하는 ‘시원적’ 혹은 ‘창건적’이라는 수사는 어떤 천형처럼 박힌 어떤 폭력의 원형을 말하는 것 같다. 한편, 그 자신 그리스도교 신자(천주교)로서 그 무의식에 내재한 어떤 원죄 신학이 비치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그는 다른 종교는 악하고, 오직 그리스도교 전통(정확히는 유대-그리스도교적)만이 옳은 듯이 말하며, 역설적으로 그 자신이 다른 종교들을 다시 희생양으로 만드는 듯하다. 어쨌든 여전히 뭔가 빠진 게 있다는 느낌이다. 그것은 삶 자체로서의 결이 겹친 살아있는 이야기이다.

나 같은 성서학 아마추어가 보기에도, 지라르가 자주 언급하는 성서의 창조 이야기는, 그것이 어떤 원형적인 시원을 밝혀주는 신화이기 이전에, 출애굽(Exodus)이라는 역사적(물론 해석된) 사건의 경험에 기반을 둔 세계와 우주에 대한 해석학을 통해 생성된 결과물이다. 출애굽의 경험과 그 이야기가 과거를 가리키는 창세 신화와 그 이후의 역사 해석의 원리가 되었다. 그렇다면 해석학, 혹은 해석과 분석의 근거가 되는 경험은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늘 반복되어 기억되는, “떠돌던 백성들이 노예가 되었다가 해방된 사건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이 때문에 먼저 관심이 가는 것은, 어떤 원형적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도 끼지 못했던 떠돌이의 경험, 박해받았던 노예의 경험, 그리고 여기서 해방된 경험에 대한 풍요로운 이야기이다. 한편으로는 원형 구조에 대한 관심과 분석의 과잉이 풍요로운 이야기의 기억을 담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5.18을 다시 돌아본다. 질문은 민노씨의 말마따나, 왜 우리는 “이제 합법으로 위장된 폭력의 구조는 죽음을 보이지 않는 투명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데 속수무책인가?

그동안 “5.18”은 숫자 그 자체로서 큰 울림과 떨림이 있었다. 그 숫자로서만도 떠올려지는 화면들(우리는 나중에 처참한 사진과, 질 낮은 비디오로 숨어서 봐야 했으니까), 풍문들(우리는 몰래 귓속말로 전해들어야 했으니까)이, 그리고 거기서 나온 참을 수 없는 분노들(진보 논리 이전에 우리는 눈물을 훔치고 가슴을 찢을 듯이 일어섰으니까)이 우리의 살갗과 눈물에 범벅되어 이야기로 남았던 것 같다. 이런 점에서라면 5.18을 ‘사태’로 부르든, ‘민주화 운동’이라 부르든, ‘민중 항쟁’이라 부르든,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5.18이라는 숫자로서 우리에게는 5.18의, 그리고 그에 대한 이야기와 생생한 기억, 그 이야기와 그 기억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이 있었다.

한동안 “5.18”은, 출애굽 사건이 그리했던 것처럼, 우리 삶과 사회의 변혁에 대한 해석의 토대로서 작용했고,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최소한 지난 25년여 동안 “5.18”은 이런 점에서 가장 극악한 폭력에 대한 폭로요, 진보적 운동의 근거였다. 이참에 묻고 싶은 것은, 그 근거가 되는 그 경험의 이야기가 기억되고 재생산되는 방식은 어떤 것이었나 하는 것이다. 우리는 5.18을 거대한 박물관으로 만들어 놓지는 않았나, 우리는 자기 입맛에 따라 늘 멋대로 요리하고 치장하는 데 써먹긴 했어도, 그 의미는 과잉되어 넘치는 대신에, 아직 펼쳐지지 않았던 그 속의 이야기들은 묻히고 잊히지 않았나, 아니 그 몇몇 의미들만 확대되어 곧장 주장이 되지 않았나, 그 사이에 망각의 시간에 몸을 던져서, 그 화면과 풍문과 분노로 몸에 새겨졌던 이야기들은 하나씩 잊혀지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기억되어야 한다고들 하는데, 무엇이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의 틀 속에서 기억될지를 마련하지도, 아니 우리 스스로 그렇게 기억하지 않고, 점점 늙어가는 피부에 우리의 감수성을 내버려두고 둔감해지지는 않았는지 하는 상념에 이른다.

어찌 보면 무엇보다도 그 살에 새겨진 이야기들에 대한 감수성을 회복하는 일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무엇이 우선일지를 두고 말이 많을 법도 하지만, 폭로 전략의 효율성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감수성이 무디어져 그 폭로가 식상해진 것이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분석과 전략 속에서 우리는 비판의 대상을 늘 밖에 두다 보니,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않거나, 쉽게 면책하고 만다. 폭로되어야 할 것은 이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기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니 결국 “매일매일 투명한 죽음을 만들어” 내는 일에 공조하는 셈이기도 하고, 폭력을 까발리기는 커녕, 여전히 스스로 폭력 은폐의 주체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민노씨 글 탓에 아주 잡스런 생각이 부조리하게 일었다.

낙관과 비관 사이

Wednesday, May 13th, 2009

내용 없이 징징거리는 듯한 블로깅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돌이켜야겠다. 한 주 전 쯤 교회 내에 있는 어떤 분의 긴 편지에 교회의 여러 일들에 대해 답장하면서, 결국에는 ‘잡감’에 대한 또다른 소회를 적는 것으로 마감하고 말았다.

올해 들어 잡감들이 더욱 밀려 옵니다. 블로그에도 적어 놓은 적이 있습니다… 그 잡스러운 생각들은 성직자들과의 관계, 교회의 문제, 그리고 성직 자체에 대한 고민 속에서 나옵니다. 남을 두고 비판하는 시점에서 나온 고민도 있고, 순전히 제 개인적인 고민에서 나온 것도 있습니다. 결국에는 잡감들 속에서 저는 스스로를 도마 위에 올려 놓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고 서로들 스스로의 도마를 마련해 보기를 권유하려고 미욱한 고민이나마 공개했던 것이지요. 이를 통해서 내 무의식에 흐르는 것들을 들춰서 어떤 너머를 지향하고 살아가보자는 심산입니다. 그런 일이 쉽지 않을 터입니다. 그런데 이 어떤 너머라는 초월을 종교인들 마저 대수로이 여기지 않는다면 누가 생각한단 말입니까? 신자 아닌, 성직자 아닌 사람들도 우리보다 더 깊이 보고, 식별하고 있는데, 우리 자신이 뒤틀린 자의식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는 신자로서, 성직자로서 직무유기입니다.

우리 자신의 뒤틀린, 혹은 가려진 무의식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니 이렇게 고약한 방식으로 공방을 주고 받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 공방이 감정을 상하게 한다고 여긴다면, 그냥 멈추는게 서로에게 이득입니다. 한편, 그렇게 쉬이 상하는 감정을 갖고 성직자 할 일은 아니라는게 제 최근의 결심입니다. 오해를 하더라도 창조적으로 하자는게 또 다른 결심입니다. 그런 창조적인 오해는 서로에 대한 궁금증을 되살려 서로를 먹이며 발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 복합감정에 사로잡혀 오해를 양산하는 무의식의 구조가 밝히 드러나서 그 어둠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점에서 아직 저는 낙관주의자입니다. 그러니 이 시간에 이렇게 긴 답장을 쓰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전히 저는 비관주의자입니다. 제 한계를 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 한계가 다른 이들과의 공명을 통해서 낙관을 비추지 못한다면, 아마도 저는 비관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것대로 제게서 세상에 대한 쓸데없는 소망을 없애서 하늘에 대한 희망을 열어준다면, 그 비관도 나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돌이키는 시점의 마지막 푸념이길 스스로 바란다.

기도의 창

Tuesday, May 12th, 2009

산란한 마음의 창은 어디를 향해 열려 있는가? 기도는 늘 매개(medium)를 바라는 것이겠으나, 창(窓)은, 그 한자의 말마따나 좀더 분명한 성사(sacrament)의 이미지일 것이다. 창은 바람이 들고 나는 것, 닫힘과 열림, 보호와 투시,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너머를 향한 응시를 드러낼 것이다. 여전히 우리는 창 안쪽에 머물러 있지만, 그 나만의 세상 너머를 창을 통해서 본다. 그것이 유일하게 자신을 넘어서는 일이다. 이렇다면 기도는 ‘나’를 넘어서도록 매개하는 것이어야 한다.

기도와 창에 관한 이 잡념이 어울리는 통에, 오래도록 남아 있던 말들, 그러나 서로 상관없을 듯한 말들이 함께, 어디서 쑥하고 드민다.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기억하는, 마리아와 원장 수녀님의 대화 가운데 한토막.

하느님께서는 문을 하나 닫으시더라도, 어딘가에 창 하나를 열어 두신단다.

조앤 치티스터 수녀님은 기도와 창을 이렇게 연결하신다.

탈무드에 나온 말이에요. ‘창 없는 방에서는 기도하지 말라.’ 다시 말해 마음 속에 세상을 담아 두지 않고서는 기도하지 말라는 말이지요. 영성 생활의 목적은 우리를 현실에서 구출하는게 아닙니다. 그 목적은 그 현실을 우리가 함께 창조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어요.

하느님은 나를 어느 열린 창으로 이끄실까? 그 창 너머로 무엇을 응시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창조하며 살게 하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