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일상' Category

모호한 길의 모험

Monday, February 27th, 2006

격월간 [공동선] 3-4월호에 실린 글을 이 자리에 옮겨 싣는다. 쓰나미 재해에 관련한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의 글을 번역하여 싣는 일로 인연을 맺은 “공동선”에서 다소 거창하게 “나의 길”이라는 제목의 글을 부탁해 왔다. 나이 70줄은 돼야 이런 제목을 받을 만한 터에, 뭘 살아왔다고 “나의 길”을 운운하는가 싶었는데, 바로 으레 그래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앳된 생각이라도 나누려는 게 기획의도라는 해명에 한번 써보마고 했다. 내뱉은 말들은 늘 부끄러움이지만, 여전히 걸어가는 여정길에서 우연히 만날 어떤 날줄이 되는 경험 나누기였으면 하는 한가닥의 바람일 뿐… 여기에 중복 게재를 허용해 준 격월간 [공동선]과 문윤길님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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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신부가 주인공인 NBC의 새 TV 드라마

Friday, January 6th, 2006

한국에서는 미국의 최근 인기 TV 드라마들이 곧잘 소개되어 동영상 파일로도 돌아다닐 정도가 된 모양이다. 그러나 정작 미국에 와서 살아가는 처지에서는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될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없지 않지만, 11시 뉴스 빼고는 드라마 시청까지는 엄두를 못낸다 (여러 이유에서 ^^). 그런데 계속해서 보게 될 것 같은 TV 드라마가 오늘 밤부터 시작된다. 한 성공회 성직자의 고민과 가족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The Book of Daniel”이 그것이다.

방송국의 선전 등에 따르면, 주인공 다니엘 웹스터 신부는 교회에 헌신적이고 가족에도 충실한 성직자이다. 하지만 성직자로서 신앙적인 회의가 있으며, 가족은 가족대로 복잡한 고민과 갈등을 노출한다.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과는 다른 신앙적 견해때문에 교구장인 여성 주교 (여성 주교 –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성공회에는 여성 주교가 있다)와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가족사의 개인은 더 복잡하다. 신부는 병원 처방이긴 하지만 강력한 진통제인 비코민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부인은 백혈병으로 아들을 잃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해서 낮에도 마티니 한잔씩을 홀짝거려야 하는 알콜 중독기가 있다. 쌍둥이 동생 (혹은 형)을 백혈병으로 잃은 아들은 동성애자이다. 딸은 어딘 가에 쓸 돈을 마련하려고 마리화나를 거래하고, 입양한 중국계 아들은 교인의 딸과 사귀면서 문제를 일으킨다. 이런 지경에 있는 신부에게 예수님은 종종 나타나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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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죽음 – 엘스 컬버와 로제 수사

Wednesday, August 17th, 2005

이틀에 걸쳐 두 죽음의 소식을 연이어 듣게 되었다. 내 이웃에 사는 신학생의 남편 엘스 컬버(Ells Culver, 78세)와 방금 기사로 들은 떼제 공동체 로제 수사(Brother Roger, 90세)의 죽음이다. 이 고령의 두 죽음이 내내 마음에 깊이 남는 것은 그들이 전 생을 평화만들기에 헌신했기 때문이다.

3주전 발바닥에서 발견된 피부암인 흑색종(멜라노마) 제거 수술을 받고, 림프절에 전이된 종양 제거 수술 날짜를 받아 놓고 있던 엘스 컬버(Ells Culver)는 우리 광복절날인 8월 15일 밤 갑작스럽게 숨을 거두었다. 옆집에 사는 동료 신학생의 남편인 까닭에 2년 전 그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미국 내 민간 구호 조직인 Mercy Corps 재단의 공동창립자요, 수석부총재였다. 무엇보다 그는 아시아와 북한 식량 지원의 실무 책임자이기도 했다. 중국 성결교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중국에서 자라난 엘스 컬버는 이후 한국의 선명회(현 월드비전)과 연계하여 전후 한국 식량 원조를 도왔고, 그의 인도주의적 구호 활동은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그가 1990년 대 이후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진 곳은 북한이었다. 해마다 3-4차례씩 북한을 방문하는 강행군을 계속했다. 그의 발바닥은 세상의 가난을 둘러보며, 식량꾸러미를 나르는 무게를 감당해야 했다.

3명의 자녀와 4명의 의붓자녀, 그리고 9명의 손자녀를 거느린 대가정의 가장으로서, 그리고 환갑이 넘어 성소에 응답하여 신학생이 된 아내의 남편으로서, 그는 그 희끗한 머리카락과 하얀 수염만큼이나 깨끗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그 부드러운 목소리는 찬찬히 자신의 성장사와 신앙 이야기, 성공회 신자가 되게 된 연유, 그리고 북한 원조의 뒷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내가 공부하는 GTU 한인학생회는 지난 4월 이 분을 모셔서 북한 정치와 기아 문제에 대한 경험을 들었다. 어떤 정치적 이유를 차치하고라도 굶주림이 외면되어서는 안된다는 인도주의적 의지와, 완전히 폐허가 된 전후 북한의 복구 과정과 정치 체제의 성립 과정에서 형성된 그 사회 만의 특별한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그의 생각은, 여러모로 우리를 숙연하게 했다. 자존심 하나로 버티고 있던 북한이 식량 원조와 관련하여 대표자를 미국에 파견했을 때, “무슨 일로 왔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우리는 친구를 만나러 왔다”고 응답했다는 예화를 들려주면서, 변화는 신뢰와 우정 안에서 생겨난다는 자명하지만 잊고 있던 깨달음을 되새겨겨 주기도 했다.

8월 15일 광복 60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우리는 북한 정부 대표들이 국립 현충원에 참배하고, 우리 국회를 방문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 평화의 기운 속에서 엘스 컬버는 잠들었다. 그도 이를 알았으리라.

로제 수사(Brother Roger)의 죽음은 5분 전에 엿본 세계성공회 웹사이트의 소식을 통해서 다가왔다. 평생을 평화만들기에 헌신한 그의 생이 무참한 폭력에 의해서 무너지는 이 아이러니가 주는 충격을 쉽겨 삭여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떼제 공동체의 기도 모임 중에 36살의 루마니아 여인이 휘두른 칼에 찔려 15분 만에 숨을 거두었다. 세계는 이 평화의 사도를 잃은 충격에 한동안 말을 잃을 것이다.

떼제 공동체가 현대 교회에 던져 주는 의미를 기사로 소개한 적이 있거니와, 무엇보다도 미국으로 건너오기전 성가수녀원에서 수녀님들과 함께 시작한 떼제 기도 모임의 경험 속에서 그는 내 생에서 어떤 식으로든 닮아가야 할 성인 가운데 한 분이었다. 미국에 건너온 이후로도 매주 첫주에 어느 수도원에서 열리는 떼제 기도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가족과 한 시간을 넘게 달려가는 것은 내게 설렘의 시간이요, 기도 안에서는 평화와 깊은 영성 체험의 시간이었다.

그들이 이제 하느님께로 돌아갔다.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죽음은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이니, 그들의 정신과 족적이 우리 안에 새겨져 다시 부활하기를 희망한다. 하느님 품 안에서 편히 쉬소서, 엘스, 로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