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이야르 신부와 함께 기도하기

April 16th, 2011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한가지 대답은 없다. 교회는 수많은 기도 방법을 마련했다. 교회 전통을 들춰보면, 어느 하나를 꼭 집어 말할 수 없음을 금세 알게 된다. 게다가 신앙 전통에 따라 그 신학과 성정과 기풍 때문에 강조하거나 인기있는 기도 방법도 저마다 다르다. 자기의 처지와 맥락에 따라 자기에게 맞는 기도도 다 다르다. 그러니 유행처럼 번지는 어떤 기도를 맛볼지언정, 자신에게 맞지 않는 방법에 자신을 맡기거나 강요해서는 안 된다. 자칫 자신의 영적 성장에 큰 걸림돌이 되기 일쑤다. ‘기도’ 또는 ‘영성’ 간판을 내걸고 장사한다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리는 처지에 더욱 조심할 일이다.

전례 전통을 바탕으로 신앙 생활하는 교회에서는 성찬례 자체가 가장 바탕이 되는 기도이다. 그 가운데 성찬기도는 이런 전례 전통의 교회 공동체가 드리는 기도의 핵심이다. 전례 전통의 교회는 성찬례에서 사제와 더불어 공동체 전체가 이 성찬기도를 바치는 교회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를 사적으로 드릴 방법은 없는가? 성무일도가 있겠으나, 그것도 본래는 공동체 사용을 염두에 둔 것이다. 또 성찬례와 연결짓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혼자 기도하는 처지라면, 기도서를 펼쳐 <정심기도>로 시작하여, 바로 성찬기도로 건너가 천천히 의식하며 읽는 것으로 사적인 기도와 성찰의 시간으로 삼을 수 있겠다.

teilhard.jpg성찬기도의 영성을 따르되, 침묵과 성찰을 주로 하고 싶다면, 아래 “떼이야르 신부와 함께하는 기도”를 참고할 만하다. 이 기도 방법은 떼이야르 드 샤르뎅 신부가 1923년에 쓴 <<세계 위에서 드리는 미사>>에 바탕을 둔 것이다. 떼이야르 신부 자신은 미사가 없을 때면 자신의 글을 거듭 읽으며 기도했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또는 읽은 뒤, 거기서 비롯한 기도 방법을 따를 수 있겠다.

내 첫 사제 서품 기념일에 천주교 어느 수녀님이 선물로 건넨 <<세계 위에서 드리는 미사>>는 이후 내 기도 내용과 그 방법의 중심이 되었다. 서울 정동길 어디쯤에서 수줍게 선물을 건네고 사라진 수녀님을, 그 후 한 번도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 책을 펼칠 때마다, 그리고 다른 이들과 동료 신부님들에게 그 책을 권할 때마다, 여러 얼굴과 더불어 그 수녀님의 얼굴을 되새기고 기도를 드렸다. 잘 지내시리라 믿는다.

떼이야르 신부와 함께 하는 기도

떼이야르 신부와 함께 하는 기도는 미사의 구조를 따른다. 곧 봉헌과 축성, 영성체로 이뤄진다.

봉헌에서 우리가 마음에 둔 모든 일을 되새긴다. 우리의 희망을 되새기고,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들의 희망을 되새기며 시작한다. 마음에 둔 일은 구체적이고 자세할수록 좋겠다. 그런 다음, 인류와 그 희망을, 이 지상과 그 배고픔을 되새긴다. 그리하여 그것이 우리의 고민과 염려가 되도록 한다. 이 모든 것을 하느님께 바친다. 그런 다음, 우리가 처한 비참함과 우리에 소중한 사람들이 처한 비참함을 생각한다. 지구 상에 있는 이들이 겪는 고통, 자연 세계가 겪고 있는 고통을 마음에 담는다. 이때도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세계를 이루고 있다. 봉헌에서 우리는 우리 세계를 드린다. 우리가 아는 그대로 세계를 하느님께 드린다. 이로써 이 모든 파편이 하나인 영혼이 되어 울부짖는 소리를 듣는다. 세계를 이루는 이 파편들은 바로 우리 자신을 이루는 것들이 아닌가? 이 울부짖음은 분열된 우리의 깊은 내부에서 솟아난다. “우리 안에서 우리 없이” in nobis, sine nobis 나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이 봉헌을 받으신다. 이 일은 축성에서 일어난다. 예수께서 우리 세계가 자라고 꽃을 피우고, 익어가는 모습을 보시며 말씀하신다. “이는 내 몸이다.” 그리고 이 세계가 시들고 상처 입고 잘리는 모습을 보시며 다시 말씀하신다. “이는 내 피다.”

이로써 우리네 삶은 하나의 성사가 될 수 있다.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주님의 몸과 피가 될 수 있다고 선언하셨으니, 모든 사건이 이제 영성체가 된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관심과 염려를 당신 안으로 받아들이셨다. 이 일이 일어날 때, 그분은 참으로 “우리의 주님”이시다. 그분은 세계의 주님이시다. 이로써 우리 세계는 모든 것을 새롭게 보게 된다.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을 그분의 살로 보고, 우리가 아는 실패들을 그분의 피로 본다.

기도를 마치면서, 하루의 관심과 염려를 다시 한번 되새긴다. 우리가 가진 희망과 우리가 처한 비참으로 돌아간다. 이제 그것은 다른 것이다. 그 희망과 비참은 이제 그리스도께서 품은 관심과 염려이다. 매일 어떤 사건이 펼쳐질 때마다, 우리는 그 각각의 사건이 축성되었으며, 그 사건 하나하나를 “이것은 주님의 몸” 또는 “이것은 주님의 피”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 날의 모든 사건은 이제 새로운 순간, “영원한 영성체”의 순간으로 변한다.

떼이야르 신부는 <<피정 노트>>에서 성 이냐시오의 기도가 자신에게 쉽지 않다고 여러 번 털어놓은 바 있다. 그러나 이냐시오 기도의 양심 성찰을 두고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성 이냐시오는 하루가 끝난 뒤 그날 일어난 모든 일을 돌이켜 어떻게 살았는지를 되돌아보고 이를 자신의 기도를 삼았다. 그러나 떼이야르 신부는 하루를 시작할 무렵, 그날에 펼쳐질 모든 일을 우리가 살기 전에 봉헌하라고 가르친다. 그리하여 그것이 예수님과 함께 나누는 영성체의 사건이 되게 하라고. 성 이냐시오와 떼이야르 신부는 아마도 우리 삶의 모든 사건이 이 기도의 내용을 이룬다는 점에 생각을 같이 했으리라. 성 이냐시오의 기도로 하루를 마친다면, 떼이야르 신부와 함께하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할 일이다.

원문: Thomas M. King, SJ, “To Pray As Teilhard Prayed”
번역: 주낙현 신부

마르크스는 옳았는가? – 테리 이글턴

April 12th, 2011

역자 주: 이미 한국에서 많은 독자를 얻은 테리 이글턴이 최근에 <<왜 마르크스는 옳았는가?>>를 펴냈다. 그 책 전체를 살피기 전에, 미국 천주교의 진보적인 잡지 Commonweal 에 실린 이글턴의 <마르크스는 옳았는가? – 아직 늦지 않은 질문>을 접했다. 출간된 책과 비교하니 1장의 부분을 순서를 조금 재편집하여 실은 것이다. 이 글을 거의 같은 때에 접한 @lightfaraway 님과 함께 번역하기로 했다. 알아보니 한국에서는 그 책 전체가 번역될 것이 확실하단다. 오히려 안심이다. @lightfarway 님이나 내가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므로 번역의 허점이 많을 테니 말이다. 다만, 전문가의 전체 번역이 나오기까지 맛뵈기가 되었으면 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올린다. @lightfarway 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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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옳았는가? 아직 늦지 않은 질문

테리 이글턴

35년 전만 해도 미국과 유럽의 많은 사람은 마르크시즘에 기꺼이 귀 기울이려 했다. 겨우 10년이 지나자 마르크시즘은 신봉할 만한 것이 못된다고 거의 모두가 동의했다. 어째서 이렇게 갑자기 변했을까? 어떤 새로운 발견으로 마르크시즘 이론의 오류가 입증된 것일까? 마르크시즘이 제기하는 문제들에 더는 관심이 없어진 것일까? 아니면 그 문제 자체가 사라져버린 것일까?

사실 문제의 그 시기에 무언가 일어나긴 했다. 1970년대 중반 이래로 서구의 체제는 몇몇 중대한 변화들을 겪었다. 전통적인 제조 산업에서 상업주의, 커뮤니케이션, 정보 기술, 서비스 산업과 같은 “탈-산업적” 문화로 바뀐 것이다. 소규모, 탈중심적, 다목적, 비위계적 기업들이 유행했다. 시장의 규제는 철폐되었으며, 노동계급 운동은 야만적인 법적-정치적 공격에 내몰렸다. 지역적, 젠더, 인종적 정체성은 더욱 꾸준히 성장했지만, 전통적인 계급 충성도는 약해졌다.

새로운 정보 기술은 이 체제의 세계화가 증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 과정에서 한 줌의 초국적 주식회사들은 가장 손쉬운 이윤을 추구하면서 전 지구를 가로질러 생산과 투자를 분배했다. 상당수의 제조공장은 “저개발” 세계의 저임금 지역을 외주처로 삼았다. 이로써 일부 편협한 생각을 하는 서구인들은 중공업이 지구 상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고 결론 내렸다. 이러한 전 지구적 이동에 뒤이어 대규모 국제적 노동 이주가 따랐다. 그와 더불어 빈곤한 이민자들이 더 나은 경제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인종주의와 파시즘이 부활했다. “주변부” 국가들이 저임금 노동, 사유화된 시설들, 삭감된 복지, 초현실적으로 불평등한 무역 조건에 얽매여 있었다면, 메트로폴리탄 국가의 수염을 기르신 사장님들은 넥타이를 풀고, 셔츠 단추를 풀고, 사원들의 정신적 웰빙에 조바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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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성공회 여성 성직 10주년 생각

April 9th, 2011

한국 성공회가 여성 성직 서품을 한 지 10년째 되는 해다. 이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하는 성찬례와 곁들인 축하 행사가 열린다는 소식이다. 몸이 함께 하지 못하니 기쁘게 축하하는 마음을 담아 작은 후원금을 보내는 일로 하릴없이 대신했다.

여러 생각이 겹친다. 교회 역사와 교회 안에서 여성의 위치, 그리고 교회 일치 대화에서 여성 성직을 둘러싼 논쟁, 그리고 여성 성직 서품이 결정되기까지 수많은 여성이 흘렸는 땀과 눈물, 여전히 남은 과제들. 이는 또한 사적인 경험과 잡감으로도 번진다.

1. 여성 성직: 교회 일치의 걸림돌?
2. 사적인 인연
3. 세계 성공회 여성 성직 연대기

1. 여성 성직: 교회 일치의 걸림돌?

역사가들과 신학자들은 묻혀 있던 교회 여성의 역할을 추적하고 그 자리를 되살려 내고 있다. 그 와중에도 여성 성직은 늘 성공회와 천주교 간 교회 일치 대화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천주교 안에서도 새로운 도전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 미래는 요원하다. 여성 성직에 대한 성공회의 태도를 간결하면서도 잘 드러낸 글은 이것이다. >> 여성 성직: “무엇”과 “어떻게”의 사고 방식

이런 참에 8세기 이탈리아에서 나온 전례문 한 토막을 흥미롭게 읽는다. 바로 여성 부제 서품식문이다.

여성 부제로 서품받을 후보자를 주교에게 추천한다… 후보자가 머리를 숙이고, 주교는 그의 손을 얹고 이렇게 말한다.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느님, 주님께서는 거룩한 독생자를 동정녀에서 태어나게 하시어 여성을 거룩하게 하셨으며, 또한 성령의 은총을 부어 주셨으니, 성령님은 남성에게만 오시지 않고 여성에게도 오시나니, 이제 주님의 이 여종을 돌아보시어, 이 여인을 주님의 섬기는 직책으로 부르시고, 이 여인에게 넘치는 성령의 은총을 내려 주소서. 아멘.”

주교는 서품받은 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한다.

“지고하신 하느님, 주님께서는 여성을 축성하여 주님의 거룩한 성전에서 섬기는 일을 거절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주님을 위한 봉사자의 직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주님께서 페베를 선택된 사목직으로 직분으로 받아들이신 것처럼 이들 위에 성령의 은총을 부어 주시어 이 여종에게 그 일을 맡기시고 이 여인을 주님께로 축성하시어, 주님이 펼치신 사목의 은총을 수행케 하소서…”

(8세기 이탈리아-비잔틴 전례서 <여성 부제 서품식문> 바티칸 도서관)

그런데 왜 여성을 부제직에만 제한해야 하는가? 서품식문에 담긴 신학은 이미 사제직으로 연장하기에도 손색이 없다.

2. 사적인 인연

한국 성공회에서 여성 성직 논의는 1970년대 이후로 계속되었다. 사적으로 여성 성직 서품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터에, 여성 성직 실현에 박차를 가하려고 마련한 여성 성직 특별위원회에서 신학 자료 조사위원으로 ‘잠시’ 힘을 보탠 적이 있다. 1999년이었을 것이다. 태부족한 신학 자료들과 다른 나라의 역사적인 경험을 정리하고 좀 더 나은 토론의 길잡이로 제공하는 일이 내가 맡은 일이었다. 지금의 여성 성직자들이 그 일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잠시’만 일한 연유가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관구 의회에서 교회 발전 계획 보고서가 채택되었는데, 그 안에는 여성 성직 서품 논의에 관한 ‘보고서’도 들어 있었다. 그 보고서의 결론은 여성 성직 서품을 허용하라는 요구였다. 그런데 이 보고서 채택을 여성 성직 서품 허용으로 해석하여 어느 교구에서 여성 성직 서품을 전격 실행했다. 그 뒤 여성 성직 특별위원회는 갑자기 해체되었다. 어떻게 나도 그 일을 그만두었는지 알 수 없다.

이런 갑작스러운 실행을 보고 혼란스럽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했다. 조금 늦더라도 좀 더 내실을 다지면서 나갔으면 했다. 무엇보다도 이런 갑작스러운 실행이 장기적으로 여성 성직 후보자와 이후 여성 성직자의 사목 활동에 큰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염려했다. 운동을 하더라도, 하는 사람이나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이나 좀 더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런 생각이 개혁을 유보하는 논리로 이용된다는 것도 알았다. 그렇지만 당시 논의 수준과 준비로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러나 얼마지 않아 나는 이런 생각이 혹시 나 자신이 누리는 남성 기득권에서 나온 것은 아닌가 하고 반성했다. 둘러보니 오랜 세월을 기다리고 분투했던 많은 여성과 여성 성직 후보자들의 땀과 눈물이 흥건했다. 내 염려는 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 무엇때문에라도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에 대한 희생을 담보로 유보할 수는 없다. 내 불필요한 염려, 혹은 내 무의식의 남성 기득권이 누구에게 희생을 강요하지나 않았나 생각하니 참으로 미안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아쉬움은 남는다. 교황청의 경고를 받고 교수직에서 쫓겨난 한국 천주교의 어떤 사제 학자는 매우 독특하게 여성 사제 반대 논리를 편 적이 있다 한다. 남성들이 오랫동안 지배해서 망쳐놓은 성직자 상과 성직자주의를 타파하지 않고 여성 사제를 허용했다가는 여성들마저 망친다는 주장이었다. 천주교는 여성 사제 실현이 거의 불가능한 처지인지라 우스개로 던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궤변처럼 들릴 수도 있는 이 말이 매우 깊은 반성에 자리한 고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유학 오기 전, 교구 내 어느 여성 성직 후보자에게 짧게 당부했던 말이 기억난다.

교회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남성에다, 별 무리 없이 성직 서품을 받은 사람으로서 말하기 참 미안합니다. 그 미안함을 무릅쓰고 부탁합니다. 저 같은 남성 성직자보다 더 잘하셔야 합니다. 불평등한 요구라는 걸 저도 잘 압니다. 그러나 첫걸음의 발자국을 따라 다른 이들이 걸을 테니까요. 그동안 남성의 전유물이 된 탓에 생긴 성직자 권위주의의 유혹이 곧 뒤따를 거에요. 그 유혹을 조심하세요. 끝까지 저 같은 남성 성직자를 동지로 여기고 참된 도전을 주셨으면 합니다. 정말 잘해 주세요.

아직도 이 당부가 유효할까? 떠난 지 오래여서 알 수가 없다. 아니 더는 이런 부탁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길 바란다. 여성 성직 10주년, 한국 성공회의 모든 여성 성직자에게 마음 깊은 곳에서 연대와 축하의 인사를 보낸다.

3. 세계  성공회 여성 성직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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