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가 성공회를 어찌한다고?
November 1st, 2009(註: [성공회 신문] 요청으로 지난 달(10월 21일) 성공회 탈퇴자 혹은 성공회를 떠나려는 보수파 일군에 대한 교황청의 조치에 대해 쓴 글을 여기에 옮긴다(11월 1일치) 이미 한국 성공회 관구 게시판에 올렸던 글이나(10월 22일), 다듬어서 신문에 다시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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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가 성공회를 어찌한다고? – 최근 바티칸 교황청의 발표에 대한 간단한 해설
지난 10월 21일(화)에 있는 천주교 교황청의 발표는 세계의 성공회와 천주교 신자 모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 내용이 어떤 것인지를 차분히 알아보기도 전에, 우리의 언론은 외신을 그대로 받아 적거나,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기사를 위한 기사를 내기에 바쁜 인상이었다. 몇몇 유력 신문의 제목은 이를 잘 보여준다.
- “가톨릭, ‘성공회를 품안에'” (한겨레)
- “결혼한 성공회 사제도 가톨릭으로 개종 가능” (한국일보)
- “성공회 신자들 돌아오시오” (조선일보)
이러한 기사 내용은 일어난 일의 사실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고, 오히려 왜곡할 여지가 있는 불분명한 것들이다. 그러므로 사실에 따라서 몇가지를 바로 잡는게, 신문 보도에 당황하는 우리의 마음을 가라 앉히고 사태의 추이를 이해를 높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 이 일은 영국 성공회가 중심이 되어 있고, 아직 세계 성공회에 전반에 관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세계 성공회에도 점차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교황청의 이 조치 발표는 영국 성공회(캔터베리 대주교)와는 사전 협의가 거의 없었으며, 그 통보 조차 매우 촉박하게 해서 많은 이들을 당황스럽게 했다.
1. 이 조치의 내용은 무엇인가? 천주교가 성공회를 흡수하는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이 교황청 발표가 말하듯이, 실제로는 이미 성공회를 떠난 특정한 무리(이른바 Traditional Anglican Communion)를 우선 대상하는 것이며, 앞으로도 그들과 비슷하게 성공회를 떠날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교황청 말로는 이들이 오랜동안 이런 조처를 요청해 왔으며, 이에 대한 응답이라고 밝혔다.
그 내용은 성공회를 떠난 주교와 사제들을 받아들여, 이들을 천주교 사제로 다시 서품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천주교 사제가 된 이들은 성공회 전례 전통을 부분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허용하겠고, 성공회를 떠난 성직자와 신자들을 위해서 특별 관리 교구(Personal Ordinates: 군종 교구와 같이 지역 구조가 아닌 특별 교구 형태)를 만들어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교회법적인 조치가 바로 [사도 헌장]이라는 교황 문서이다. 그러나 아직 [사도 헌장]의 자세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천주교가 성공회를 떠난 전직 성공회 성직자를 받아들이는 통상적인 진행 과정은 이렇다.
전직 성공회 출신 성직자는 천주교 안에서 새로 서품을 받아야 한다. 이때 주교든 사제든 모두 사제로 서품받는다. 결혼한 전직 성공회 주교는 주교가 될 수 없다. 결혼한 사제는 다시 서품받고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으나, 천주교 주교가 될 수 없고, 재혼할 수 없다. 성공회 출신 독신 사제는 천주교 서품 이후에는 결혼할 수 없다. 결혼하고 싶으면 부제로만 서품받거나, 서품 전에 결혼해야 한다.
어쨌든 이미 성공회를 떠난 사람이 다시 천주교 서품을 받는 것이므로, 천주교가 성공회를 흡수 운운하는 말은 성립이 되지 않는다. 성공회를 떠난 사람을 수용한다는 게 맞는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천주교를 떠나 성공회에 들어온 성직자와 신자들이 더 많다. 그러나 이 일로 성공회가 천주교를 흡수한다고 말하지는 않는 것과 같다.
2. 이번 교황청 발표의 배경은 무엇인가?
첫째, 이 일은 교황 베네딕도 16세의 내년(2010년) 영국 방문 계획이라는 맥락에서 나왔다. 16세기 천주교와 성공회의 분열 이후, 교황의 첫번째 영국 방문 시점에서, 이미 성공회를 떠나서 그들만의 교회를 만든 사람들, 그리고 성공회 내에서 천주교를 지향하는 사람들을 위한 하나의 공격적인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세계 성공회, 특히 영국 성공회 내의 갈등이다. 현재 영국 성공회 안에서는 여성 사제 서품, 여성 주교 성품 문제, 그리고 세계 성공회 안에서는 동성애자 문제와 관련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올해 영국 성공회 관구 의회에서는 여성 주교 성품의 교회법적 장애가 제거되어, 여성 주교가 나오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이로 인해 성공회를 떠난 사람들과 떠날 사람들이 있고, 이 기회에 천주교는 여성 성직 절대 반대 입장에 같이하는 성공회 신자들을 자기 교회로 끌어내겠다는 생각이다.
셋째, 세계 성공회 차원에서 여성 사제, 여성 주교, 그리고 동성애 문제로 인해서 세계 성공회 자체를 탈퇴한 국제적인 그룹이 만들어진 것이다. 교황청은 이렇게 갈라져 나온 이들 전체를 대상으로 이런 조치를 내렸다.
3. 새로운 일인가?
성공회 성직자와 신자가 천주교로 옮겨 간 일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최근의 예만 보더라도, 이미 1992년 영국 성공회가 여성 사제 서품을 인정하고, 1993년에 실제 서품이 이루어지자, 이를 반대하던 사람들이 영국 성공회를 떠나 천주교로 갔다. 물론 성직자들은 통상적으로 새로 천주교 사제로 서품을 받았다. 영국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지난 몇세기에 걸쳐서 있었던 일이다.
또한 성공회나 정교회에서 온 성직자와 교회가 자기 전통의 전례를 사용하는 경우도 이미 존재한다. 성공회 전례를 쓰는 천주교회(Anglican use Roman Catholic)나, 비잔틴 전례를 쓰면서도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여 바티칸의 관할 아래 있는 동방 천주교회 등이 그렇다. 이 부분은 새로울 게 없다.
4. 그런데 왜들 호들갑인가?
이번에는 아예 교황청이 특별법을 제정했다. 게다가 성공회를 떠난 성직자와 신자들로 구성된 특별 교구를 만들어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성직자와 신자가 개인 자격으로 천주교의 기존 지역 교구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조처를 통해 지역 교구 중심 전통의 치리 체계에 예외를 두어 이런 특별 교구를 설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성공회를 떠난 사람들 뿐만 아니라, 동요하고 있는 성공회 신자를 적극적으로 끌어오겠다는 적극적인 시도로 해석되기도 한다. 교황청의 공식적인 결정인 만큼 곧 다른 나라에도 파급 효과가 생길 것이다.
이 부분에서 몇가지 논란점이 있다. 우선 이런 조치는 성공회 내부의 분열을 촉진시킬 가능성이 있다. 성공회 안에서 이견이 있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문제를 풀어갈 가능성을 거의 차단해 버릴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한편 양 교회가 지난 수십년간 일치를 위한 대화와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있다. 양 교회는 동등한 선교의 협력자로서 서로의 전통을 존중하며 지냈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그간의 노력을 상당히 후퇴시키는 일이라는 우려가 있다. 실제로 이 문서가 교황청의 일치 성성이 아니라, 교리 성성에서 나왔다는 것은 그 후퇴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많은 이들이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천주교의 오랜 습관이다. 다른 교단들(성공회, 정교회, 개신교)과 일치 대화를 하는 와중에도, 이런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교황 문서들이 발행된 게 한 두번이 아니었다. (특히 전직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때).
5. 성공회 신자로서 생각해 볼 문제들
이번 조처의 몇몇 관행은 새로운 일이 아니지만, 특별 교구까지 제안하는 교황 문서로 나온 이상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성공회로서는 몇가지 중요한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있다. 그 질문들을 소개하면 이렇다.
1) 이런 일들은 성공회, 특히 영국 성공회가 자기 신학과 선교 비전에 따른 분명한 태도를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여성 사제 및 여성 주교직과 관련하여, 이를 반대하며 영국 성공회 자체의 분열까지를 들먹이며 성공회 내 일치를 위협했던 이들에 대해서, 일치를 명분으로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반대파들은 자기들끼리만의 관구를 만들겠다고도 공언했고, 그 공언이 실제로 천주교의 이번 조처의 빌미가 됐다.
2) 세계 성공회 차원에서는 1944년 이후 여성 사제(홍콩의 리 팀 오이)를 서품해왔고, 이미 세계 성공회 안에는 여성 주교도 있다. 영국 성공회는 1992년에야 여성 사제 서품을 허용했고, 이 때 분란을 일으켜 성공회를 나가 천주교로 갔던 사람들에게 온갖 혜택을 베풀어 보냈다. 그 때문에 신실하게 남아 있던 성공회 성직자들과 신자들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이는 좋지 않은 선례로 남아서 기회만 되면 성공회를 나가려 했던 사람들에게 빌미를 주었다. 결국 이번에는 여성 주교직을 두고 논란이 일자, 천주교가 먼저 이 반대파들을 위한 조처를 취한 것이다.
3) 천주교에도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천주교는 천주교는 독신 남자만 사제로 서품하는데, 이런 조처로 기혼 사제가 계속 유입되는 것이다. 이 때 기존의 천주교 독신 사제들 가운데 결혼하고 싶은 이들에 대한 배려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게다가 교황청이 받아들이겠다는 첫번째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대주교는 전직 천주교 사제였다가 성공회로 와서 다시 성공회를 떠났고, 게다가 결혼하고 이혼하고 재혼한 사람이다. 이 때문에 어떤 이들은 이 조처가 장기적으로 천주교의 자충수라고 본다.
4) 성공회를 떠나서 천주교로 가는 것은 뉴스가 되지만, 그 반대로 천주교에서 법제화된 독신 사제 조항, 여성 성직 반대, 교황권 등에 대한 이견으로 천주교를 떠나 성공회나 다른 교단으로 들어오는 일들에 대해서 언론은 별로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절대적인 숫자로 보면, 성공회에서 천주교로 가는 성직자보다는, 천주교에서 성공회로 오는 성직자가 더 많다. 특히 교회 안에서 여성의 지위와 관련하여 천주교를 떠나는 여성이 많다.
5) 한편 이 과정이 영국 성공회와 세계 성공회 전체에도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여성 성직 문제 등 교회의 변화에 대해서 극구 반대하던 무리들이 성공회를 아예 빠져 나가 천주교로 가게 되기에 성공회 내의 조율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 조처의 파생효과로 영국 성공회뿐만 아니라, 세계 성공회 내부의 전체적인 유대가 깊어지고 그 선교의 방향이 좀도 선명해지리라 전망하기도 한다.
6) 이 일을 사목적인 견지에서 보기도 한다. 굳이 성공회를 떠나기로 고집하는 사람을 잡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지혜로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캔터베리 대주교님께서 이 조처를 두고 불확실하게 떠도는 이들에게 하나의 길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 그런 맥락이다. 물론 떠나는 사람을 슬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자리하여 신앙할 곳을 천주교를 통해서나마 마련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7) 이 일을 계기로 성공회는 하느님에게서 받은 특별한 선물을 분명히 해야 한다. 여성 성직이든, 동성애 문제이든, 성공회는 성공회의 전통과 신앙 안에서 식별한 은사를 가지고, 다른 의견을 감싸고 인내하고 표용하면서 하느님의 선교라는 전망에서 성공회의 길을 가야 한다. 이것이 사실 다른 교단 전통에게 바르게 선교적으로 도전하는 것이고 또한 도움을 주는 길이기도 하다.
([성공회 신문] 2009년 11월 1일자, 원문 10월 22일 관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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