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터베리 대주교 부활절 영상 메시지 2009

Saturday, April 11th, 2009

알렐루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님의 부활절 영상 메시지입니다. 성주간과 성삼일(Holy Triduum), 그리고 부활밤으로 이어지는 전례를 되새기며, 부활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의미와 은총을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은총과 기쁨이 모든 분들에게 넘치기를 바랍니다.

성삼일 – 다시 들춰본 생각

Friday, April 10th, 2009

그리스도교는 기억 위에 세워진 종교이다.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 기억이 그 기반이다. 그리스도의 삶이 그랬듯이, 그래서 결국 처형으로 마감되었듯이,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것은 늘 “위험한 기억”(dangerous memory – Johann Baptist Metz)이다. 그 기억은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고통받는 사람과 연대하다가 스러진 인간에 대한 기억이기 때문에, 가해자들에게는 그 사건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시간은 기억의 적이다. 시간은 망각을 부추기고, 거기에 기대어 많은 것들을 숨기기 때문이다. 이 시간의 망각을 저지하려는 안간힘과 기억의 장치가 바로 교회력이요 전례력인 셈이다. 그 안간힘을 보지 않고서 전레력을 보면, 그건 참으로 거추장스러운 전통의 찌꺼기에 불과할 것이다. 역사에서 힘있는 이들은 이러한 기억의 장치를 다시 억압의 장치로 바꾸기도 했으니, 전례와 전례력은 만신창이가 되어 저항과 억압이 가없이 되풀이되며 섞이게 되었다.

이 역사의 오랜 갈등이 태연하게 전례의 전통 여기 저기에 남아 있기도 하다. 아니, 그래서 언제든지 균열을 이루며 비집고 나올는지 모른다. 아마 그래서 전례를 둘러싸고 늘 다툼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삶이 두텁듯, 전례는 두텁게, 혹은 무감각하게, 혹은 생채기를 건드리며 아직 살아남아 있다.

“위험한 기억”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적다가 마무리하지 못하고, 성삼일을 두고 적었던 생각들을 되돌아 본다.

어렵고 힘든 시절 – 사순절기 시작

Wednesday, February 25th, 2009

사순절의 시작이다. 재의 수요일 미사는 학교 채플에서가 아니라 가까운 교회에서 가족들과 함께 드렸다. 재를 이마에 받고서 “기억하라,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선언을 듣는다.

영성체를 하는 동안, 교회의 Angel Band는 성당 뒤켠에서 만돌린을 튕기고 작은 북을 두드리며 Hard Times Come Again No More 를 불렀고, 자리에 돌아온 우리도 모두 따라 읆었다. 구슬픈 노래지만, 좀 발랄하게 연주하며 불렀다. 사순절 내내 부활의 희망을 키워내려는 것이리라. 어쨌든 어렵고 힘든 시절이다. 작은 이들에게 더욱 그렇다.

삶의 즐거움을 잠시 멈추고 삶의 많은 눈물을 세어 보세나.
우리 모두, 가난한 이들과 더불어 슬픔을 맛보며.

이번 사순절 기도와 묵상은 Episcopal Relief & Development 에서 내놓은 Peace & Compassion: 2009 Lenten Meditations을 길잡이 삼기로 했다 (링크에서 PDF 다운로드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