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구장 회의?

Monday, February 2nd,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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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ve Walker

도대체 관구장 회의(Primates Meeting)란 무엇인가? 세계 성공회의 일치의 도구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지는 이 모임이 현재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열리고 있다(2009, 2.1-5). 세계성공회는 그 안의 다양한 교회의 일치를 위해 캔터베리 대주교(직), 람베스 회의, 세계성공회협의회(ACC), 그리고 관구장 회의를 일치의 도구라고 선언해 주었다. 그 가운데 가장 역사가 짧고 그 존재 가치가 의심스럽게 등장한 것이 다름아니라, 관구장 회의이다. 그런데 이게 지난 십여년 사이에 가장 맹위를 떨치는 집단이 되고 있다. 그저 성공회 간 협력 관계를 위한 사교 모임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출발했던 모임을 이제 세계 성공회의 일치와 분열을 가름하는 잣대로 삼으려는 이들 탓이다.

교회 전통으로나 교회법 상으로나 성공회는 대체로 교구 중심으로 그 교회의 단위와 치리, 그리고 자율성을 구가해 왔다. 최소한 성공회 안에서는 모든 교구와 그 교구장인 주교들은 평등하다. 캔터베리 대주교 역시 세계 성공회의 일치의 상징일지라도, 그는 [동등한 가운데 으뜸](primus inter pares)일 뿐이다. 그런데 관구장들은 이런 오랜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 최소한 지난 몇십년간 관구장들은 그 직함에서나 그들의 집단적인 행동을 통해서, 힘겹게 지워가고 있는 교회의 권위주의적 위계 질서를 역사에 되살려 내고 있다. 관구장이라는 허명에 집착하는 이들을 여럿 보았고, 다른 지역 주교들에게 엄포를 놓으면서 람베스 회의 참석을 막아서는 일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일도 들었다. 아마 자리와 허명에서 권위를 얻어보자는 욕심이 이 사교 모임을 공룡으로 만들었을게다. 개인의 허영심은 끼리끼리 모이면 큰 힘이 되곤 한다.

지난 람베스 회의에서 대부분의 주교들은 이런 관구장 회의의 헛된 권위주의에 매우 불편한 시각을 드러냈지만, 막무가내다. 람베스 회의를 훼방했고, 캔터베리 대주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겠노라 선언했고, 아예 그가 집전한 성찬례에서 영성체도 하지 않았던 이들이 여럿이었다. 관구장 회의를 일치의 도구는 커녕, 분열의 도구로 정착시켜려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무슨 낯으로 모여 들었는지 모르겠다. 하긴 낯두꺼운 관구장 회의니까. 그러니 이런 냉소의 대상이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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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인간이라면…

Friday, January 23rd, 2009

현 2mb 정권은 인간에 대한 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집단이다. 사람의 목숨 여섯을 순식간에 앗아간 대참사다. 당시 진압 방법의 폭력성과 야만성이 속속들이 드러나는데도, 수사를 성급히 종결하려는 시도가 뻔히 드러나 보인다. 수구 언론과 이 정권의 똘마니 의원들은 아예 연행된 사람들에 대한 멍석말이를 하고 있다. 이 틈을 타서 그 허술하기 짝이 없는 무식한 진압 작전을 승인한 자도, 대충 자리 보전을 점치는 분위기로 기울고 있단다. 생명에 대한 예의가 조금이라도 있는 자들이라면 이럴 수는 없다.

이 정권과 그 졸개들에게는 인간이란 함께 살아가는 집단이라는 최소한의 이해가 없다. 콘테이너로 장벽을 쳐서 막으면 그만이고, 그 콘테이너로 짓누르면 그만이다. 서로 소통해야 할 언어가 애시당초 없는 것들이다. 그러니 뚫린 입이라고 나오는 것들이, “고의적 방화”니 “도심 테러”하는 망발들이다. 또다른 콘테이너가 계속 나올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 덜 된 것들만 탓해야 무엇하리.

예수께서 갈릴래아의 학살을 보고 받으셨을 때, 그리고 실로암 탑 붕괴로 많은 이들이 죽은 것을 예를 들어서 말씀하실 때, 희생자들에게 적용하려던 ‘필벌’의 방향을 돌리셨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죄가 많아서 그런 변을 당한 줄 아느냐?”(루가 13:1-5) 참사를 만들어낸 원인을 쏙 빼고 희생자들에게 모든 것을 덮어 씌우려는 못된 생각을 전복하셨다. 게다가 이 말씀은 이 참사를 저잣거리의 남의 일쯤으로 돌리는 일에 대한 매서운 경고다. 누가 이런 사람 덜 된 것들을 최고의 자리에 앉혔는가?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이 말씀은 욕망교회의 광신도들인 2mb와 그 졸개들에겐 공염불일 터이니, 우리 먼저 회개하고 정신차려서 이 정권의 광란을 막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도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성공회를 향한 오바마의 연설

Tuesday, January 20th, 2009

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일을 쉬고, 우리는 신학생 아파트 이웃들과 함께 모여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식을 시청했다. 역사를 만들어 내는 순간이었다. 솔직히 처음으로 미국 정치가 부러웠다.

내내 우리나라를 생각했고, 무엇보다 우리 교회를 생각했다. 또 오바마의 취임 연설이 우리 사회와 교회의 현실과 겹쳐졌다. 그 참에 그 생각들이 겹치는 대목만을 우리 교회 용어로 바꿔 옮겨 보았다. 오바마와 미국인이 당면한 미국의 위기는, 우리 사회와 교회의 위기와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니, 듣고 가늠해 보아야 한다. 우리 지도자들에게서 – 기대했으나 – 듣지 못하고, 남의 말을 베끼고 고쳐 옮기고 있자니, 참으로 서글프다.

우리 교회는 약해졌습니다. 탐욕과 무책임의 결과입니다. 어려운 결정을 내리지 않고, 새로운 시대를 위한 선교를 준비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교회 전통의 위대함을 다시 선언합니다. 우리의 위대함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얻어서 성취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여정은 어떤 지름길이 있거나, 어떤 소수의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수고를 대신한 여가나, 부자들, 혹은 명망가들의 기쁨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위험을 무릅쓰고, 행동하며, 어떤 일을 만드는 사람들의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저력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낡은 생각을 고집하고, 몇 사람들만의 이익을 보호하고, 언짢은 결정을 미루기만 하는 시절은 지났습니다. 그런 시절은 분명히 지나 갔습니다.

우리는 지금 교회를 새롭게 만드는 일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현재 교회의 위기는, 제대로 감시하는 눈이 없이는, 교회가 제멋대로 돌아간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오직 소수의 부자들을 위한 정책으로는 이 교회가 결코 번성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번영은 무엇을 기꺼이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이 공동선을 위한 길입니다…

부패와 사기을 통해서, 다른 의견을 입다물게 하면서 얻은 권력에 집착하는 이들에게 고합니다. 당신들은 잘못된 역사의 길을 걷고 있다고…

우리의 도전은 아마도 새로운 것일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사용해야 할 도구 역시 새로운 것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를 성공으로 이끌 분명한 가치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정직과 수고, 용기와 공정한 행동(fair play), 관용과 호기심, 충성심과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이 가치들은 오래된 것이지만, 진실된 것입니다. 우리 역사를 통해서 경험하거니와 이 가치들이야말로 진보의 힘이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진실의 가치로 되돌아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책임감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닌 확신의 원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불러 불확실한 우리의 운명을 새롭게 만들라고 부르셨다는 사실에 대한 책임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