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성공회는 교회에 대한 내 생각을 바꿔놨다.”

Saturday, January 29th, 2011

번역자의 발뺌

영 가디언 지에 난 테오 홉슨(Theo Hobson)이라는 젊은 신학자의 글을 올린다. 그의 경력에서 보이듯, 조직신학 분야에서 학위를 하고(교회의 권위 문제),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의 신학, 특히 그의 성사적 교회론에 대한 비판적 저작을 펴낸 바 있다. 제도적 교회의 문제, 특히 영국 성공회의 국교회 지위를 비판하면서, 스스로 제도 교회를 나와 가족과 함께 거리에서, 혹은 어느 곳에서 새로운 교회 운동을 벌이고 있는 모양이다. 그의 짧은 글 하나는 우리 말로도 소개된 적이 있다. 테리 이글턴의 <이성, 신앙, 그리고 혁명>(우리말 번역본 제목은 기괴하게도 <신을 옹호하다>) 서평.

그의 칼럼을 내 식대로 읽는다면, 그의 중요한 지적 하나는 교회 전통 안에서 발전된 제도적 교회의 어둠 뒤로 새롭게 발견하는 제도적 교회의 경험과 가능성이다. 그리고 그것은 ‘의례'(ritual)의 전통에 대한 재발견과 연결된다. 이는 내가 언젠가 말한 바 있는 문제의식과 닿아 있다. 예를 들어, 위계(hierarchy)는 늘 오용 자체, 혹은 오용의 근원인가? 권력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며, 저항의 대상만 되는가? 이 의문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위계와 어떤 권력과 맞서고 있으며, 어떤 위계/질서와 어떤 권력/힘을 만들어 내려 하는가로 고민의 방향을 돌려야 한다. 지배하는 권력(power-over)이 아닌, 보호하며 섬기는 권력(power-within)으로 위계와 권력을 재규정할 때라야, 정치 혹은 권력에 대한 만연한 혐오주의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 와중에 ‘의례’는 이러한 새로운 위계와 권력의 삶을 실험하고 훈련하는 새로운 시공간이다. 이는 전례(liturgy)의 목적이기도 하다.

번역은 맥락과 맥락을 연결한다. 번역어는 그 사이에서 불안하게 휘청거린다. 아랫글에서 가장 휘청거리는 번역어는 ‘리버럴'(liberal)과 ‘자유주의'(liberalism)이다. ‘리버럴’과 ‘자유주의’는 그 번역어 이전과 이후에도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좁은 이해로 공격받아 고생해 온 서러운 개념이다. 그 서러움을 여기서 다 풀 수는 없겠고, 번역자의 발뺌을 일러두기로 삼는다.

원문의 “liberal”은 대체로 ‘리버럴’ 혹은 ‘자유로운’으로 번역했다. (즐겨찾는 맞춤법 검사 사이트는 이를 ‘혁신적’ 혹은 ‘진보적’으로 고치라고 조언하지만, 무시했다.) ‘자유주의자’ 혹은 ‘자유주의적’이라는 이데올로기적인 냄새가 나는 표현으로 제한하기에는 그 경계가 넓고 모호하다. 그러나 이 문제의식에 일관되지 않게 “liberalism”을 통상 번역하는 대로, “자유주의”라고 했다. 이 비일관성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지만, 이른바 ‘자유주의’ 개념을 인식하는 우리 안의 양면성을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원래 글에서 말하는 ‘리버럴’과 ‘자유주의’ 개념에 가장 가까운 용례는 고종석에게서 본다, 고만 적는다. ‘Post’는 ‘이후’ 또는 ‘탈'(脫)로 번역할 수 있겠으나, 그 의미의 이중성때문에 ‘포스트’로 남겨 두었다.

“미국 성공회는 교회에 대한 내 생각을 바꿔놨다.”

테오 홉슨

단골 독자라면 알겠지만, 그동안 나는 이 난(가디언지 Comment is Free: 역자 주)을 비롯하여 이곳저곳에서 좀 더 급진적으로 리버럴한 그리스도교를 논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썼다. 영국 성공회(Church of England)의 국교 유지를 맹렬히 비난한 것으로 시작하여, 교회 모든 주요 형식들이 자유와 동떨어진 사고방식들로 가득 차 있다고 비판했다. 정말로 리버럴한 그리스도인들은 새롭고, 아나키적이며, 포스트-교회의 그리스도교 문화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느 중요한 지점에서 내 마음을 바꿔 먹었다. 조직을 갖춘 종교가 그렇게 나쁜 방식은 아니겠다고 이제는 생각하게 되었다. 다양한 형태의 권위주의적 형식들은 피할 수도 있거니와, 구원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생각을 고쳐 먹은 데는 두 가지 일이 있었다. 첫째, 몇 년 동안 살핀 끝에, 새로우면서도 포스트-제도 교회의 그리스도교 문화를 아주 잘 드러내고 있는 실체를 찾는 데 실패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했다. 둘째, 내 생각에 반대되지 않는 교회의 한 형식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약 10년 전, 9.11 사태 직후에 일어난 논쟁을 통해서 나는 영국 성공회에 대한 내 헌신을 재고하게 되었다. 나는 영국 성공회가 그 국교회의 위치를 박차고 나오면서 스스로 개혁해야 한다고 믿었다. 개혁이 있었나? 전혀 아니었다. 영국 성공회 내부에는 그러한 개혁에 대한 의지가 거의 없음을 발견했다. 오히려, 보수적인 목소리들이 점차 지배하게 되었다. 이들 보수적 주교들과 신학자들은 세속의 자유주의가 암울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들 떠들었다. 나의 환멸은 교육 분야에서 영국 성공회가 하는 역할을 보면서 끝을 봤다. 영국 성공회는 이류 학교 운영에 점차 관여하면서, 실속 없는 교회 참석률 올리기에 급급했다.

다른 교회들도 내 관심을 끌지 못했다. 모든 제도 종교들은 구제 불능의 꼴통들 같았다. 비국교 교회들도 오야붕스런 교리주의로 끌려가는 것 같이 보였고, 그리스도교와 자유주의 사이의 친화성을 선포하는 데 실패했다. 그 때문에 나는 새롭고, 좀 더 급진적이며, 리버럴한 그리스도교를 주장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그리스도교는 세속의 진보적 생각을 인정하면서, 제도적인 정통주의를 경계한다. 전통적인 교회 대신에, 나는 자유로운 형식과 축제적이며 예술적으로 신앙을 표현하는 어떤 느슨한 문화를 제안했다. 새롭고 자유로운 종교 문화 말이다.

그러나 참여할 만한 이런 문화를 찾지 못했다. 나도 경험해 본 대안 예배 운동(alternative worship)의 몇몇 시도들은 영국 성공회가 소심하게 진행하는 것들이었다. 교회를 멀리하는 몇몇 그리스도인들을 만났지만, 그들은 어떤 일을 하는 데는 너무 냉담했다. 정말 인정하기 싫었던 사실은, 제도에 기초한 그리스도인들만이 의례의 중요성을 이해했다는 점이다. 이들만이 고대의 어느 팔레스틴 사나이에 대한 예배의 의례에 깊이 참여했던 것이다. 사실, 이러한 참여 없이는 그 무엇도 그리스도교라 부를 수 없다.

조직된 종교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조직된 종교만이 그리스도교 의례를 조직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이 의례가 없다면 그리스도교는 그저 모호한 관념의 집합에 불과하다. 나는 의례(ritual)가 그 제도들로부터 해방되었으면 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어떻게 가능한지 알지 못했다. 이 질문을 몇 년 동안 살폈지만, 그 어떤 대답도 얻지 못했다.

그러다 작년에 나는 미국 뉴욕으로 옮겨 갔다. 그곳에 좀 더 강력한 포스트-제도적 그리스도교 문화가 있는지 보고 싶었다. 좀 더 구체적인 “이머징 처치” 운동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 있다. 그러나 제대로 발견했는지는 모르겠다. 미국 성공회(The Episcopal Church)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게 될지 궁금했다. 미국 성공회는 국교회가 아닌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리고 세계 성공회 여러 교회와는 달리 동성애 혐오의 원리주의와도 단절했다. 그러면 여기서 자유주의의 어떤 모델을 발견할 수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제도 종교의 다양한 병증에 시달리고 있는가? 아마도 후자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미국 성공회 예배의 맛은 내게 이런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 “바로 이거 아냐?”

세계 성공회의 위기를 뒤돌아 보면서, 미국 성공회의 담대함에 깊은 인상을 받은 나 자신을 발견한다. 진 로빈슨 주교의 성품을 유보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은 그리스도교의 기본 원칙 하나가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도덕적 원리주의에 반대할 필요가 있으며, 모든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것은 사도 바울로의 프로젝트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바울로는 보수적인 인사들에게도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 이 위기는 바울로의 마음 내부에서 일어나는 논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나는 리버럴한 성공회 신앙을 (모호하게) 믿으며 자랐다. 그리고 그것이 대부분 신화였다는 것을 점차 알게됐다. 영국 성공회는 항상 자유주의에 양가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 문제에 과감하게 직면하기보다는 점잔빼며 무시했다. 정말 영국 성공회에도 지적이며 리버럴한 목소리가 있지 않나? 그렇다. 그러나 그들의 범위는 제한적이다. 그들은 방 안에 있는 코끼리를 무시하는 실용적 방법을 택했다. 교회를 어슬렁거리는 그 늙은 반(反)리버럴의 저주를 말이다.

이곳의 공기는 더 상쾌하다. 미국 성공회는 지난 십여 년 동안 리버럴한 그리스도교의 전 지구적 선구자로 등장했다. 이 점이 내가 아직 교회를 포기하지 않도록 나를 설득하고 있다.

번역: 주낙현 신부
원문: 英 가디언 誌 2011년 1월 28일 치 http://goo.gl/PgnPx

“여성 혐오의 승리에 길을 잃은 신앙인들”

Wednesday, January 19th, 2011

2009년 10월 천주교 교황청에서 성공회를 탈퇴한 보수파 인사들을 위한 특별 조치가 발표된 바 있다. 문제의 핵심은 성공회의 여성 성직이었다. 세계 성공회 안에서도 뒤늦게 영국 성공회가 1992년에 여성 사제직을 인정하고, 여성 주교직의 걸림돌도 제거한(2014년 이후 가능) 마당에, 성공회 내 보수 인사들이 탈퇴 이후를 교황청과 논의하면서 나온 조치였다.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는 직후에 로마에서 있는 교회 일치에 대한 강연에서 성공회의 여성 성직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2010년 교황의 영국 방문과 존 헨리 뉴먼 추기경의 시복식과 더불어, 탈퇴한 성공회 성직자들에 대한 조치는 더욱 탄력을 받았고, 지난 11월에는 영국 성공회의 몇몇 주교들(은퇴 주교 포함)이 천주교로 건너갔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셋이 천주교에서 부제와 사제로 동시에 재서품을 받았다.

이와 관련하여, 영 가디언지는 이례적으로 사설에 이 문제를 다루면서, 천주교의 조치와 이 사건을 강력하게 비판한다. “여성 혐오”가 교회 권력 사이에서 힘을 얻는 동안에 정작 신자들을 절망감을 느끼고 있다고 경고한다.

사설을 아래에 옮긴다.

“여성 혐오의 승리에 길을 잃은 신앙인들”

지난 9월 교황 베네딕트의 영국 방문 끝에 그가 다른 그리스도교 공동체들 앞에 펼친 기세와 호의는 영국 천주교에 도전을 가져다 주었다. 거리낌 없는 (여성 성직) 반대자들이었던 전직 성공회 주교들을 부제서품과 사제서품을 단번에 연결해서 재빨리 천주교 사제로 서품한 일은 대부분 사람들이 원하는 우선 과제는 아니었다.

영국 천주교를 이끄는 빈센트 니콜스 대주교는 개인적으로 불편하게 생각하던 일을 어제 행사에서 최선을 다해 잘 처리했다. 모양을 냈을 지언정, 이는 천주교가 성공회에 대해 사람 빼내기에 집중했다는 사건이다. 이로써 종교개혁 이후에 잃은 점수를 천주교는 만회했는지 모른다.

여성 성직에 반대하면서 성공회를 탈퇴한 사람들을 위한 천주교의 특별 자치 교구는 천주교 내부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양 교회의 긴장을 야기할 뿐이다. 그리하여 다시한번 그 관심은 그리스도교의 다른 교단들 사이의 논쟁에 쏠리게 될 것이며, 종교를 실제 세상과는 관계 없는 것으로 보이게 할 것이다.

가난의 문제, 기후 변화, 자연 재해 등 우리 지구가 직면한 모든 도전들을 염려하는 판국에, 종교 기간들이 여성이 사제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로 언쟁하면서 소진하는 모습은 빈정거림의 대상이다

이제 종교 만이 여전히 여성을 이등 시민으로 다룬다. 천주교가 자신과 더불어 제도적인 여성 혐오를 나누면서 성공회를 탈퇴한 한 줌의 변절자들을 모집하는 일이 계속 잘 될 것이라 믿는다면, 이는 오산이다.

이 와중에, 교회가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되는 일들, 즉 사회 정의를 위한 일,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는 일들은 다시한번 무대 밖으로 밀려난다. 이런 교회 권력의 정치 게임에 끼어들고 싶지 않은 대부분의 영국 천주교 신자들은 절망감을 느낄 것이다. 다른 종교의 신앙인들이나 무종교인들, 그리고 좀 더 깨어있으며 관대한 이들은 분노를 가지고 점차 그들에게 등을 돌릴 것이다.

번역: 주낙현 신부
원문: 영 가디언, 2011년 1월 16일치 http://goo.gl/yb9tA

대화의 무대에서 넓혀가는 경계와 사이의 지평

Monday, March 8th, 2010

이글은 블로거 민노씨의 글에 대한 한 상념이며, 블로거 아거님과 민노씨에게 드린다.

1.
선한 이들과 나누는 대화는 그 자체로 큰 위로와 힘이 된다. 이미 내 안에 있었다 하더라도 여러 분심때문에 흩어져 힘을 못쓰던 생각과 다짐이, 서로 귀 기울인 대화 속에서 자리를 찾아 단단해지고 든든해진다. 일상이든, 블로그이든, 트위터이든, 그 대화와 나눔 속에서 그 단단한 알맹이를 키우고, 흩어진 상념을 통해서나마 자신을 드러내어 바라 볼 수 있는 일은 영적인 일이다.

거대한 힘의 구조 속에 부속처럼 끼어서, 혹은 그에 저항한다 할지라도 힘이 달려 좌절하거나 절망하는 처지에서, 이러한 대화들은 사소한 것이더라도, 허튼 지혜이더라도, 일천한 경험이더라도, 공감과 기쁨으로 모여서 서로 위로하고 서로 일으켜 세운다. 새로운 질서나 공간에 대한 고민은 이러한 위로와 공감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동안에 조금씩 쌓이고 퍼질 수 있을 것이다. 트위터의 짧은 몇 마디든, 블로그의 어설픈 고민이든, 엮이는 동안 서로 도우며 질정할 수 있다면.

한편, 이런 기대는 사람마다 다르겠다. 인터넷이든 어디든, 어떤 공간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가 이런 공감을 확대하고 기쁨의 전염을 확장시키는 일이라 믿을 수 있다. 아니라면, 이 공감을 향한 행위도 본질상 일인극의 무대일 뿐임을 깨달아 그 무대에 선 실존의 깊이를 되새길 수도 있을 것이다 (민노씨). 그마저 아니라면, 인생에서 펼쳐지는 어떤 위대한 무대를 꿈꾸며 그 희망 속에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러나 준비된 연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처지에서 바라보든, 그 무대의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보는 이름 모를 관객”이 있음에 감사할 일이다 (아거). 아거님이 말하고, 민노씨가 되새겨 준, ‘무대의 배우론’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다른 한편, 이 무대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리기도 한다. 앞선 글에서 내비쳤던 것처럼, 전 지구적인 자본의 지배와 그 행태의 하나인 상품화와 소비주의 문화에 대한 고민 탓일까? 그 무대가 종종 드리우는 어둠에 자꾸 의심을 둔다. 예를 들어, 입바름으로는 진보이고 산뜻한 논리와 언술로 사람을 끌어모으는 어떤 이들의 주장은 ‘노이즈 마케팅’ 같은 어둠에 기대고 있는지 모른다. 끊임없는 ‘신상'(품)스러운 주장으로 격정 어린 찬반의 싸움을 불러 일으키는 사이, 보아야 할 것들은 이미 저만치 숨어버리고 만다. 그 소비자의 분주한 입출입을 관전하는 사이, 정작 숨죽이고 있어서 세심한 시선이 아니면 놓치기 쉬운 여리고 선한 것들의 면밀한 선과 결은 ‘쌘드뻬빠’로 사정없이 밀려나간다.

어쨌든, 이 맥락에서 쓰인 ‘무대’의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받아들이고 보면, 우리 삶 자체가 무대인 것은 자명하다. 그 안에서 나 자신의 역할을 연기하는, 피할 수 없는 배우의 운명으로 무대에 우리는 던져져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내 안의 나는 ‘무대 체질이 아니다’라는 태생의 부끄럼증에 기대어, 그 무대에서 자신을 끌어내리려 한다. 방황 끝에 성공회라는 신앙 전통에서 순례의 천막을 찾았을 때, 신앙의 새로운 이름을 선택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평생 말없이 고민 많았을 마리아의 남편, 예수의 지상 ‘양’ 아버지 ‘요셉’이 마음에 다가왔다. 역사라는 무대에 잠시 나왔다가, 어느 순간에 소리 없이 사라졌던 그 사람 요셉을 내 안에서 느낀 탓인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내 생의 무대는 번듯하고 큰 무대는 아닐 것 같다. 그릇이 작은 탓이다. 그 무대가 주어진 것이라면, 유랑극단의 천막 무대 어느 한켠에서 나를 발견할는지 모른다. 인기 배우의 등장을 준비하고, 관객의 더 큰 웃음을 위해 그들의 배꼽을 잠시 쉬도록 하는, 한 짬의 ‘땜통’ 배우. 슬프도록 어설픈 배우일 성 싶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 그 작은 쉼의 시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면, 쓸쓸하지만 넉넉한 일이다.

2.
다시 돌아와 생각한다. 세상의 여러 큰 힘들이 만들어 내는 힘과 게임의 구조를 넘어설 수 있을까? 사람은 그 안에서 끼워져 살아가야 하는 한편, 그것에 저항한다. 그러나 그 진입과 저항의 경계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편만 선택하도록 몰리는 것은 아닐까? 오히려 이것은 그 큰 힘들의 전략이 아닐까? 보이지 않을 만큼 가느다랗게 그어진 분열의 금을 밟을 때마다 가해지는 폭력과 싸움에서 그나마 지친 몸을 쉬지 못하여 피폐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이런 생각에 매달린다. 경계를 분리의 선으로 삼지 않고, 쉼의 공간으로 만드는 일. 경계의 지름과 사이를 넓히는 일. ‘사이'(betwixt-between)라는 회색의 공간. 주저하면서 큰 힘과 그 문화에 어쩔 수 없이 진입했다가도 빠져나와 발을 디딜 수 있는 여백. 온몸으로 저항하다 지쳐 ‘악’만 남은 이들이 조금이라도 쉬고 충전할 수 있는 여유의 공간. 그곳은 지친 이들을 보듬고, 상처받은 이들과 더불어 ‘다양한 태도와 가치’를 발견하고, 남과 자신의 처지를 성찰하며, 새로운 힘과 용기, 그리고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다.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서 사제직의 의미와 더불어 이러한 공간을 성찰한다.

십자가 안에서 보이는 하느님은 자신의 ‘영역’ 수호를 거절한 분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스스로 영역 수호를 거절하는 인간의 삶 속에, 그리고 그 인간의 삶을 통하여 지극히 역설적인 방법으로 하느님은 존재한다. 이 삶 속에 하느님은 모든 순간과 생각과 행동에 침투하시며, 그 삶을 하느님께 순종하게 하신다…

[이러한 십자가 사건의 결과] 더는 도로 닫힐 수 없는 하늘과 땅 사이에 어떤 열린 문이 마련되었다. 이 공간은 하느님의 행동과 인간의 현실이, 어떤 대결이나 두려움 없이, 함께 하는 곳이며, 이곳이 바로 예수께서 존재하는 곳이다. 이 공간 속에서 인간은 오직 주어진 것들에 마음을 열며, 하느님은 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고, 다만 멈추지 않는 사랑 안에 머무신다. 그 사랑은 인간의 세계와 인간의 언어로는 오직 ‘상처입기 쉬움”(vulnerability)을 통해서만 상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공간에서 인간의 경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 공간에서 실패를 받아들이는 것은 끝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이다. 이 공간에서는 미리부터 어느 누구도 배척당하지 않는다.

예수의 행동은 이 공간과 문을 여는 것이었다… 사제직의 임무는 이제… 이 예수를 통하여 마련된 공간을 집으로 삼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공간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사제직이란 이제, 예수 안에서 신과 인간의 행동이 겹쳐진 그 공간에 자리잡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세계가 바로 그런 공간이 존재함을 알게 하는 일이다.

인간의 공동체요, 실재의 물리적 공간인 교회는 정기적으로 이곳에 모임으로써 그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인간 경험의 측면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준다…

성공회 안에서 사제직은 하느님께서 열어 놓으신 이 공간을 위해 철저히 봉사하는 것이다. 그 공간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 혼란스러운 인간이 서서히 그 안으로 들어가도록 돕고, 그 안에서는 모든 복잡한 것들과 감정적인 격동과 영적인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주고 들어준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이다.

Rowan Williams, “Space for the Divine: An Essay on Christian Priesthood in Contemporary Culture” in Praying for England: the Heart of the Church edited by Sam Wells ad Sarah Coakley (T. & T. Clark Ltd, 2008)

그러니 내가 사제이든, 어느 유랑극단의 서푼 짜리 배우이든, 유일한 희망은, 아니 함께 만들어가야 할 밝은 희망은, 이 ‘사이의 공간’에서 어슬렁거리는 쓸쓸한 이들이 맞잡은 연대의 공간이다. 대화와 실천을 통한 연대를 경험하고 넓히는 경계의 지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