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의 삶 – 스티브 잡스 1955-2011

Wednesday, October 5th, 2011

“죽음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죽어서는 천국에 갔으면 하는 사람들조차 천국에 가기 위해 죽겠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죽음이란 우리 모두가 나눌 종착지입니다. 누구도 그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래야 합니다. 죽음은 삶이 고안해 낸 가장 훌륭한 발명품이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것은 죽음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변화를 가능하게 만듭니다.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돼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누구의 인생을 살아주면서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만든 도그마의 덫에 걸리지 마세요. 다른 사람의 의견이 만들어 내는 소음이 여러분 내면의 목소리를 가리도록 내버려 두지 마세요.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 자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 마음과 직관은 여러분이 진정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부차적입니다.

“계속 배고파하고, 계속 무모하시길” (Stay Hungry. Stay Foolish).

– 스티브 잡스, 스탠포드 대학교 2005년 졸업식 축사

슬픔을 듣는 법 – 한 사제의 동행

Wednesday, June 1st, 2011

며칠 전 흐느끼는 목소리에 밤을 깨운 나는, 몇 년 전 잇따라 자살한 연예인 오누이와 그 어머니 이야기를 다룬 TV 녹화분을 아내가 보고 있던 걸 알았다. 눈물을 훔치는 아내와 건성으로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모처럼 청한 이른 잠이 날아간 터라 무심했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오늘 마주한 글을 읽고는 며칠 전 일과 더불어 마음이 먹먹해졌다. 풀어낼 많은 이야기를 뒤로하고 그저 지구 반대편 어디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 글의 주인공을 잠시 생각했다. 곧 생각을 방해하며 여러 잡념이 끼어들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자살의 소식들. 가족사의 그늘 어딘가에 꼭꼭 숨겨놓은 무참한 자살의 기억. 세상을 등진 이들과 남겨져 슬퍼하는 이들의 이야기들이 가족사와 이웃의 여러 경험과 더불어 마구 섞였다.

그러고 보니 이 블로그에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번 적었다. 또, 몇 주 전 병원에서 한 생명을 기름 부어 하느님께 보내드리고, 그와 가족을 위한 장례 미사의 긴 일정을 보내는 동안에, 죽음은 사적으로 가깝고 친밀한 것이면서도, 금세 아무렇지 않게 타자로서도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 사적인 친밀감과 타자적인 거리감 사이는 멀지 않고, 경계 역시 모호하다. 죽음이라는 사실은 객관적이지만,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들의 마음과 시선은 그렇지 않다.

오랫동안 종교는 죽음에 대한 전문가를 자처했지만, 실은 누구도 그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하고 전해주지 못한다. 그 답을 알고 있다고 자처할 때, 어떤 율법주의와 억압적 윤리로 사람을 괴롭힐 공산이 크다. 종교는 오히려 세상에 남아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들의 마음을 응시하고 듣는 행위에 집중할 때라야 그들에게 슬픔을 극복하는 힘의 시공간을 열어준다. 그 힘은 종교가 신의 이름으로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신의 힘을 말하겠다면, 오히려 신의 신비에 우리 자신을 맡겨둘 일이니, 종교는 우리 주위에 친구로 머물거나 동행하며, 스러진 삶의 기억을 우리 안에 새롭게 그리도록 이끄는 초대이다.

번역한 글을 소개하고, 서툰 번역에 대한 발뺌이나 적으려 했다가 허튼소리를 늘어놨다. 글쓴이는 영국 성공회의 은퇴한 사제이다. 이 동행기의 마지막에 나온 아름다운 문장을 우리말로 옮기기에 힘이 달렸다. 그 맛대로 느끼도록, 그리고 누구의 좋은 번역 대안이라도 듣고 싶어서, 원문 마지막 문장을 괄호에 넣었다. 제목은 내 멋대로 붙였다.

슬픔을 듣는 법 – 한 사제의 동행

데이빗 브라이언트

나는 브리스톨 템플 미드 역에 있었다. 다섯 시간 열차를 탈 참이었다. 젊은이들이 승차했고, 한 아가씨가 내 목에 두른 성직 칼라를 보더니 내게 다가왔다. “신부님, 이야기 좀 할 수 있나요?” 이런 일은 언제나 ‘신부님과 잡담’이라는 우스갯소리 같은 일의 시작이다. 피곤한 일이다. 그러나 그날은 그렇지 않았다. 세 시간 전, 자신의 남자 친구가 자살했다.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았고 치사량의 약을 일부러 먹었다. 함께 살던 아파트에서 죽은 남자 친구를 발견했다. 남자 친구는 자기 존재에서 오는 고통을 더는 대면할 필요가 없었고, 이제 그녀는 마음을 위로하려고 자기 부모님께 내려가는 중이었다.

그녀의 고뇌가 쏟아져 나왔다. 자살을 둘러싼 이런 절망적인 생각들은 익숙한 것들이었다. 성직자로 생활하면서 평생 이런 이야기를 들은 탓이다. 처음에는 하느님을 향한 분노가 나왔다. 한 청년이 자신을 파괴하는 순간에도 멍청하게 서 있는 하느님에 대한 분노였다. 아니 그보다 더 심했다. 하느님은 헤아릴 수 없는 어떤 심원한 이유를 들어서 그의 죽음을 획책한 것은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런 무참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이것은 형벌인가? 아니면 시험인가? 열차가 달려가는 동안 하느님을 향한 분노는 점차 자신의 내면을 향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인정사정없이 자기 자신을 공격했다. 정상을 참작할 만한 어떤 이유도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좀 더 마음을 썼어야 했어요.” “내가 그를 망친 거에요.” “다 내 탓인 것 같아요.”

예상했던 대로, 원망의 시선은 마지막 방향을 틀었다. 죽은 애인을 향한 원망. 그 약병을 다 삼켜버리기 전에 자기 여자 친구가 느낄 무참한 마음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것일까? 그건 겁쟁이 같은 도피일 뿐이야. 그저 수치를 남기고, 애통해 하는 이들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 자살이라는 낙인을 남길 뿐이었다. 나는 듣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상처는 완전히 배출돼야 하기 때문이었다. 분노는 소진돼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뒤라야 치유가 시작된다.

내 침묵에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그녀가 지닌 하느님 상에는 문제가 많다고 지적할 시점이 아니었다. 그녀가 생각하는 신은 벌과 상을 주고, 죽음과 생명과 비극을 독재자처럼 멋대로 관장하는 신이었다. 이런 신 관념은 어서 빨리 고쳐주어야 했더라도 말이다.

더욱이 이런 일을 무거운 윤리로 성급하게 다루는 것도 적절하지 않았다.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인데, 그런 점에서 보면 남자 친구의 행동은 나쁘고 배은망덕한 일이라 말한다 해도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애인의 죽음은 자유로운 선택이었고, 누구나 그런 권리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면, 오히려 그녀에게 배신감만 불 지필 뿐이었다.

그녀를 지배하고 있는 죄책감을 두고, 성직자랍시고 입바른 몇 마디를 던진다고 해서 그 감정이 누그러지지도 않는다. 사제가 재빨리 용서의 선언을 한다고 해서 도움될 리 없다. 다만, 자기 수용만이 도움이 된다.

그래서 나는 남자 친구와 함께했던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라고 했다. 그녀는 우울증이 드리운 어둠과 그들이 함께 싸우며 보냈던 고통스러운 밤들을 말해줬다. 그리스에서 함께 보냈던 휴가에 대한 추억, 새로 세를 내서 들어간 아파트 열쇠를 받아쥐며 기뻐했던 순간. 그 순간들 사이에 사랑의 기쁨이 한 올 한 올 짜여 있었다. 그 애인이 수채화를 그리는 붓놀림이 뛰어났다는 사실과 그가 그녀에게 얼마나 상냥하게 대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녀가 말하다 울다를 거듭하며 이야기를 누비는 동안 우리 열차는 목적지에 다다랐다.

우리는 달링턴 역에서 내렸다. 내가 집에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그녀는 괜찮다면서 내게 악수를 했다. 그냥 가라는 뜻이었다. 나는 그 마음을 알았다. 슬픔이 깊은 만큼, 정적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짐을 벗고 나서는 더더욱.

“도움을 주셔서 고마워요.”

그녀가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정말로 뭔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녀를 도와준 것은 전혀 없었다. 그녀는 사랑했던 남자의 모습을 한 획 한 획 자신의 붓질로 스스로 그려냈던 것이다(She had done that herself by painting a picture of the man she loved, brush stroke by brush stroke). 그 누구도 그 그림을 그녀에게서 앗아가지 못했다.

원문: 데이빗 브라이언트 David Bryant, http://goo.gl/Fn2H2
번역: 주낙현 신부
후원: 김현주 & 민김종훈 부제 (서울교구 강동교회)

역사와 성찬례 – 죽음의 권력과 생명의 힘 사이

Wednesday, May 11th, 2011

종교개혁은 간단히 말해서 두 세기에 걸친 전쟁이라 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16세기에는 평화기가 10년이 채 안 됐고, 17세기 중반까지 고작 2-3년이 평화기였다… 종교개혁은 이미 자라나고 있던 국가라는 권력 기계를 각각 개신교와 천주교의 옷을 입혀 그 성장을 촉진했다… [그 결과] 개신교 종교개혁과 천주교의 대응 개혁은 이어진 전쟁 속에서 엄청난 피를 뿌렸고,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교회사학자 디어메드 맥컬로흐가 그의 저작 <<종교개혁>> 막바지에서 종교개혁기의 사회적 갈등에 관하여 내린 평가 한 부분이다. 거의 두 세기에 걸친 무참한 희생을 겪고 나서야 유럽은 ‘차이에 대한 관용’이라는 지혜에 다다랐다.

‘교리’를 내세운 진리 소유 여부로 복잡다단한 삶의 결을 잘라내려는 무모함이 늘 문제였다. 기록하고 해석한 역사의 한 장을 덮으려 할 때, 그 무모함이 지금도 세계 이곳저곳에서 함부로 누구를 발길질하고 억누르고 목숨을 빼앗는 소식을 듣는다. 강제로 타인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이 진리일 수는 없다.

역사를 마주한 여러 시선에서 나온 그림과 사진을 본다. 특히 성찬례는 이 진리를 둘러싼 갈등 한가운데 있기 일쑤였다.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는 전례인 성찬례가 어찌하여 그 죽음에만 집착해 있었을까?

이단자 화형 Burning of a Heretic – Sassetta (약 1430-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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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오른쪽 제대에서는 추기경을 비롯한 고위 성직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성찬례를 거행하고 있다. 축성된 성체 거양의 순간이다. 중세 성찬례 신학의 절정이다. 신앙은 거양된 성체를 ‘보는 것’이다. 그러나 소위 ‘이단자’는 시선을 반대 방향으로 돌리고 있다. 그 교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미 발밑에서 불이 붙었건만 그의 표정은 무덤덤하다. 그 아래서 얼굴 없는 이는 죽음을 지핀다.

죽음을 끝장내고 새로운 생명을 선물로 선사하는 성찬례가 교리적 논쟁의 주제가 되고, 진리 판정의 대상이 될 때, 그것은 타인을 죽이는 도구가 된다. 중세뿐만 아니라 종교개혁기 내내 지속한 일이다.

성 마태오의 순교 The Martyrdom of Saint Matthew – Caravaggio
(약 1599-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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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제자이자 복음서 기자로 알려진 성 마태오의 최후를 그린 그림이다. 그는 성찬례를 집전하는 도중에 에티오피아 왕의 명령으로 살해 당한다. 제대 앞 계단으로 내동댕이쳐진 마태오는 이미 피를 흘리고 있고, 곁에서 복사를 서던 아이의 입은 그 광경의 두려움을 드러낸다. 살인자는 천사를 향한 마태오의 간절한 손은 저지하고, 그 오른손은 이제 마지막 철퇴를 준비하고 있다. 화가는 십 수세기를 넘어 그 사건을 당대의 미사 장면으로 재현했다. 그 안에서 카라바지오 자신은 멀리서 그 참혹한 장면을 무심하게 목격한다.

화가의 목격은 무엇을 말하는가? 첫 번째 그림(Sassetta)에 비추면, 두 제대(altar)의 차이가 현격하다. 하나는 권력자들이 소유한 제대이며 죽임을 행사하는 힘의 제대이고, 다른 하나는 늙은 사제와 어린 복사가 모인 조촐하고 힘 없는 제대이다. 카라바지오는 이단 화형의 중심이 되었던 제대를, 초기 그리스도교 순교의 제대로 되돌리고 싶었던 것일까?

로메로 대주교의 순교 (19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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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지오의 “성 마태오의 순교”는 1980년 봄에 있었던 로메로 대주교의 순교와 겹친다. 16/7세기라는 당대의 눈으로 1세기 순교 현장을 돌아봤던 화가는 현대에 살아 카메라 렌즈로 로메로의 죽음을 잡아내는 것일까. 화가의 시선은 여전히 무심할까?

엠마오 만찬 Supper at Emmaus – Caravaggio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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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신학은 중세를 거치면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희생을 ‘대속'(atonement)으로 보면서, 죽음 자체에 집착했던 것일까? 이를 의식이나 한 듯, 카라바지오는 이제 성찬례를 친히 세우신 예수를 그려낸다. 이 성찬례는 죽음을 앞둔 마지막 식사가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가 엠마오 가는 길에서 만난 두 제자와 나눈 식사이다. 죽음이 아닌, 부활의 생명이 더욱 선연하다. 낯선 나그네를 만나 허물 없이 대화하고, 한사코 묵고 가라고 초대해서 마련된 식사이다. 이 대화와 초대가 마련한 시공간 속에서 사람들은 부활하신 예수를 알아보는 깨달음으로 놀란다. 그 식탁은 기름지고 풍성하다. 이제 그리스도의 손은 캔버스를 튀어나와 우리에게 닿으려 한다.

오늘 성찬례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