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영성' Category

성삼일 – 다시 들춰본 생각

Friday, April 10th, 2009

그리스도교는 기억 위에 세워진 종교이다.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 기억이 그 기반이다. 그리스도의 삶이 그랬듯이, 그래서 결국 처형으로 마감되었듯이,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것은 늘 “위험한 기억”(dangerous memory – Johann Baptist Metz)이다. 그 기억은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고통받는 사람과 연대하다가 스러진 인간에 대한 기억이기 때문에, 가해자들에게는 그 사건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시간은 기억의 적이다. 시간은 망각을 부추기고, 거기에 기대어 많은 것들을 숨기기 때문이다. 이 시간의 망각을 저지하려는 안간힘과 기억의 장치가 바로 교회력이요 전례력인 셈이다. 그 안간힘을 보지 않고서 전레력을 보면, 그건 참으로 거추장스러운 전통의 찌꺼기에 불과할 것이다. 역사에서 힘있는 이들은 이러한 기억의 장치를 다시 억압의 장치로 바꾸기도 했으니, 전례와 전례력은 만신창이가 되어 저항과 억압이 가없이 되풀이되며 섞이게 되었다.

이 역사의 오랜 갈등이 태연하게 전례의 전통 여기 저기에 남아 있기도 하다. 아니, 그래서 언제든지 균열을 이루며 비집고 나올는지 모른다. 아마 그래서 전례를 둘러싸고 늘 다툼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삶이 두텁듯, 전례는 두텁게, 혹은 무감각하게, 혹은 생채기를 건드리며 아직 살아남아 있다.

“위험한 기억”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적다가 마무리하지 못하고, 성삼일을 두고 적었던 생각들을 되돌아 본다.

어렵고 힘든 시절 – 사순절기 시작

Wednesday, February 25th, 2009

사순절의 시작이다. 재의 수요일 미사는 학교 채플에서가 아니라 가까운 교회에서 가족들과 함께 드렸다. 재를 이마에 받고서 “기억하라,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선언을 듣는다.

영성체를 하는 동안, 교회의 Angel Band는 성당 뒤켠에서 만돌린을 튕기고 작은 북을 두드리며 Hard Times Come Again No More 를 불렀고, 자리에 돌아온 우리도 모두 따라 읆었다. 구슬픈 노래지만, 좀 발랄하게 연주하며 불렀다. 사순절 내내 부활의 희망을 키워내려는 것이리라. 어쨌든 어렵고 힘든 시절이다. 작은 이들에게 더욱 그렇다.

삶의 즐거움을 잠시 멈추고 삶의 많은 눈물을 세어 보세나.
우리 모두, 가난한 이들과 더불어 슬픔을 맛보며.

이번 사순절 기도와 묵상은 Episcopal Relief & Development 에서 내놓은 Peace & Compassion: 2009 Lenten Meditations을 길잡이 삼기로 했다 (링크에서 PDF 다운로드 가능).

재의 수요일 – T. S. 엘리엇

Wednesday, February 25th, 2009

재의 수요일 – T. S. 엘리엇

Ash Wednesday (1930) by T. S. Eliot (1888~1965)

I / II / III / IV / V / VI

V

잃은 말을 잃고, 써버린 말을 써버렸다면,

들려지지 않은, 말해지지 않은

말씀은 말해지지 않고, 들려지지 않는다면;

여전히 말해지지 않은 말, 들려지지 않은 말씀은,

한마디 없는 말씀, 그 말씀은

세상 안에 있고, 세상을 위해 있으니;

그리고 빛은 어둠 안에서 비췄고

말씀에 대역하여 불안한 세계는 여전히 흘렀으니

침묵하는 말씀의 언저리를 돌아.

아,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했느냐.

어디서 말씀을 찾을 것이며, 어디서 말씀이

다시 들려질까? 여기는 아니리, 충분한 침묵이 없으니

바다도 섬도 아니리, 아니리

육지도, 사막도, 습지도,

낮 시간과 밤 시간에 함께 깃든

어둠 속을 걷는 이들에게

여기는 옳은 시간도 옳은 공간도 아니니

은총의 공간은 없으리, 그 얼굴을 피하는 이들에게는

기쁨의 시간은 없으리, 소음 속에서 걸으며 그 목소리를 부인하는 이들에게는

베일을 쓴 여인은 기도할까,

어둠 속에 걷는 이들을 위하여, 그대를 선택했으나, 그대를 적대하는,

계절과 계절, 시간과 시간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며 찢겨진 이들을 위하여,

순간과 순간, 말과 말, 힘과 힘 사이에서, 기다리는 이들을 위하여

어둠 속에서? 베일을 쓴 여인은 기도할까

입구에 서 있는 어린이들을 위하여

떠나지 않고 기도하지 못하는:

선택했으나 적대하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아,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했느냐.

베일을 쓴 여인은 연약한

주목(朱木) 사이에서 그녀에게 상처입힌 이들을 위하여 기도할까

그리고 무서움에 떨며, 항복할 수 없는

그리고 세상 앞에서 우겨대며, 바위 사이에서 부인하며

마지막 사막에서 마지막 푸른 바위 앞에서

말라버린 정원의 사막 사막의 정원

말라버린 사과씨를 입 밖으로 내뱉는 이들을 위하여.

아, 내 백성들아.

(번역: 주낙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