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수요일 (IV) – T. S. 엘리엇

Tuesday, March 1st, 2011

재의 수요일 – T. S. 엘리엇

Ash Wednesday (1930) by T. S. Eliot (1888~1965)

I / II / III / IV / V / VI

IV

보랏빛 제비꽃 사이를 걸었던 이
사이를 걸었던 이
다채로운 푸르름의 여러 결이
희고 파아란 색깔 사이로 들어오고, 마리아의 색깔로,
하찮은 것들에 대해서 말할 뿐
영원한 비탄에 대한 무지와 지식
그들이 걸을 때마다 그들 사이에서 움직이는 이
그리하여 원천을 강하게 하고 활력을 새롭게 하는 이

마른 돌을 차갑게 하고 모래를 굳게 하는
고깔 꽃 파아란 빛깔, 마리아의 파아란 색깔 안에서,
그대는 기억해야 하리니

사이를 걷는 세월이 여기 있으니,
현과 피리를 버리고,
잠들고 깨는 사이의 시간 속으로 들어오는 이를 되살리느니

희고 가볍게 포개진 옷을 입고, 그 여인에게 꼭 맞게, 접힌.
새로운 세월을 걷느니,
눈물의 빛나는 구름을 통하여 되살아나며
오래된 가락의 새로운 가사로 되살아나며. 구원하라
시간을. 구원하라
더 높은 꿈속에서 본, 아직 읽지 않은 환영을
금빛을 두른 영구차를 치장한 유니콘들이 끌던 꿈속에서.

침묵하는 누이는 희고 파란 베일을 쓰고
주목(朱木) 나무 사이에서 동산의 하느님 뒤로,
하느님의 피리가 쉬지 않을 때, 자신의 머리를 숙여 예를 표했으나,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느니

그러나 샘은 솟아올랐고 새는 앉아 노래했으니
그 시간을 구원하라, 그 꿈을 구원하라
들려지지 않은, 말해지지 않은 말씀의 표시를

주목 나무에서 오는 바람이 천의 휘파람을 흔들어 없애버릴 때까지

그리고 우리의 이 유배 다음에.

(번역: 주낙현 신부)

성공회 전통과 시적 언어

Monday, August 23rd, 2010

성공회 전통의 신학과 신앙의 언어는 다른 그리스도교 전통의 언어와 사뭇 다르다. 그 다른 특징을 변별하여 ‘시적 언어’가 성공회 신앙의 언어요, 그런 점에서 아예 성공회의 영성을 “시적 상상력”으로 이름하여 풀어 내기도 한다.1

신앙이 철학의 언어와 법률의 언어에 예속되는 동안, 신을 논리에 가두어 배타적인 진리의 소유를 주장하는 무리가 득세하거나, 법적인 채무 관계로 해석하여 범죄와 처벌에 따른 심판자 신의 이미지를 구축하곤 했다. 이는 대체로 확실성의 언어이다.

그러나 시적인 언어는 불확실성의 언어이다. 그것이 비추는 신앙과 하느님은 철학적 논리와 법적 관계에 균열을 낸다. R.S. 토마스의 말을 빌자면 “지식의 상처”(the wound of knowledge)에 관여한다. 그리하여 좁은 행간 사이로 드리워진 의미의 비약과 심연은 하느님과 인간의 거리감을 암시하는가 하면, 종이에 찍힌 그 물리적 행간은 금세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거리가 좁디좁다고 비춘다. 비약과 모순의 이미지와 상징과 언어가 목적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다만, 그 시적 언어에서 가만한 응시, 혹은 어찌 말할 수 없는 쓸쓸한 시선을 본다. 그것이 하느님의 시선과 닮았으리라 생각하며.

성공회 전통에서 이런 시적 언어의 대가들은 존 던(1572-1631) 조오지 허버트(1593-1633), 토마스 트라헌(1636/7-1674)으로부터 T.S. 엘리엇(1988-1965), W.H. 오든(1907-1973), 그리고 R.S. 토마스(1913-2000)에 이른다. 어떤 이는 성직자요, 어떤 이는 신실한 신자였으나, 모두 하느님과 삶에 관한 의심과 의문을 감추지 않고, 그 갈등을 시의 언어로 토로했다. 그 의심 사이에서 떠오르는 하느님이라는 시상을 나누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신 경험-인식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때가 되어 늘그막이 소일할 일마저 없게 되면, 이런 성공회의 시적인 언어들에 기대어 나 자신을 비추고 하느님을 엿보려 번역했던 시들을 몇 수 모아 해적판 시선집이라도 내볼까 한다. 나 스스로 좋은 시를 쓸 수 없음을 한탄하지 않아도 되려니와, 하느님께서 성공회 전통 안에 허락하신 아름다움을 소비하고 향유하는 것만으로 벅찬 일일는지 모른다.

  1. cf. Bill Countryman, Poetic Imagination: An Anglican Spiritual Tradition, 1999. []

재의 수요일 (VI) – T. S. 엘리엇

Tuesday, February 16th, 2010

재의 수요일 – T. S. 엘리엇

Ash Wednesday (1930) by T. S. Eliot (1888~1965)

I / II / III / IV / V / VI

VI

다시 돌아가리라 희망하지 않더라도
희망하지 않더라도
돌아가리라 희망하지 않더라도

얻음과 잃음 사이에서 흔들리느니
꿈이 교차하는 이 짧은 전이 속에서
탄생과 죽음 사이를 꿈처럼 교차하는 황혼은
(신부님, 저를 축복하소서) 내 비록 이를 바라노라 바라지 않더라도
바위 해안을 향해 난 넓은 창으로부터
하얀 돛배들은 여전히 바다를 향해 비상하느니, 바다를 향한 비상
부러지지 않은 날개들

그리고 추락한 마음은 뻣뻣해져서 기뻐하느니
떨어진 라일락 꽃과 잃어버린 바다의 목소리 안에서
그리고 나약한 영은 급히도 반항하느니
굽은 금 지팡이를 얻으려고, 그리고 잃어버린 바다 내음은
급히도 되찾으려 하느니
메추라기의 울음소리와 급선회하는 물새떼를
그리고 멀어 버린 눈이 만드나니
상아로 만든 문 사이의 빈 형상을
그리고 내음은 모래땅의 소금 냄새를 새롭게 하느니

이는 죽음과 태어남 사이의 긴장된 시간
세 개의 꿈이 교차하는 고독의 장소
푸른 바위 사이에서
그러나 주목(朱木)을 흔들고 나온 목소리가 흘러갈 때
다른 주목이 흔들리고 답하게 하라.

복된 누이여, 거룩한 어머니, 샘의 영, 정원의 영이여,
어리석은 우리가 스스로 조롱하지 않도록 하소서.
보살피고 보살피지 않도록 가르쳐 주소서
정지하여 앉아 있도록 가르쳐 주소서
이 바위들 사이에서마저
누이여, 어머니여,
강의 영이여, 바다의 영이여
내가 분열되지 않게 하소서

그리하여 내 울부짖음이 주님께 사무치게 하소서.

(번역: 주낙현 신부)